심리재해라는 용어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심리재해’라는 용어는 인사혁신처에서 발간한 ‘공직 심리재해 진단 및 개선 표준가이드’에서 등장합니다.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직무스트레스 등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반응이 정신 또는 신체건강에 문제를 일으키고 이것이 질환이나 자살 등과 같은 재해로 이어지는 일련의 현상”
심리재해라는 용어는 "위험성평가(Risk Assessment)" 를 통해 산업재해를 예방하는 것처럼, 정신건강에 대한 위험성 평가인 ‘직무스트레스 평가’와 예방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료집] 공직 심리재해 진단 및 개선 표준가이드. 2025
직무스트레스 예방의 목적은 심혈관계질환 예방?
국가기관에서 직무스트레스 평가의 목적을 ‘심리재해’로 특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신선합니다. 왜냐면 많은 보건관리자들이 무엇을 위해 직무스트레스 평가를 시행하는지 모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직무스트레스 평가는 산업안전보건규칙(이하 규칙) 상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장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가 사업주의 의무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시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규칙의 내용을 살펴보면, ‘심리재해’보다는 ‘뇌심혈관계질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가령 규칙에는 예방조치를 이행해야 할 사업주로
-근로자가 장시간 근로,
-야간작업을 포함한 교대작업,
-차량운전,
-정밀기계 조작작업 등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이하 “직무스트레스”라 한다)이 높은 작업을 하는 경우” 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가지 조치 중 ‘뇌혈관 및 심잘질환 발병위험도 평가, 금연, 고혈압관리 등 건강증진 프로그램 시행에 관한 사항’은 제시되어 있으나, 정신건강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습니다.
초기 직무스트레스 예방의 주요 목표는 과로사 예방
2003-2004년 한국형 직무스트레스평가도구(KOSS; Korean occupatipnal stress scale)의 개발이 진행될 무렵, 우리나라는 정신건강보다는 과로사가 산업보건의 주요 과제였습니다. 이 시기는 1997년 IMF 이후 구조조정의 여파로 노동강도가 강화되면서 근골격계질환과 뇌심혈관계질환이 주목을 받았고, 산재보상이 증가하던 시기였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KOSS 개발과정에서도 드러납니다. 12,631명의 노동자를 표본으로 하여 설문조사가 수행되었는데, 제조업이 7,079명(56%), 운송업 1,831명(14.5%), 보건 및 사회복지업 1,001명 7.9% 순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산업구조를 보여주면서, 제조업과 운수업이 직무스트레스 관리의 중요한 대상이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논문] 한국인 직무 스트레스 측정도구의 개발 및 표준화. 2005
최근 직무스트레스 관리의 화두는 휴먼서비스 업종
2010년대 들어 직무스트레스는 새로운 맥락에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서비스 산업의 급성장과 함께 고객 응대 과정에서 감정노동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갑질" 논란과 관련된 사건들이 공론화되었고, “감정노동”은 모두가 인식하는 용어가 되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은 감정노동자 보호를 위한 법적, 사회적 논의로 이어졌으며, 2018년에는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시행됩니다. 이어서 2019년에는 근로기준법에 직장내 괴롭힘 금지 규정이 만들어집니다.
경찰, 소방공무원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에 대처하기 위해 심리상담센터가 운영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교사나 공무원들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자살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사회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키워드는 '휴먼서비스 업종'와 ‘정신건강’이었습니다.
*휴먼서비스(human service) 업종이란? 개인의 안녕과 삶의 질 향상을 목표로 의료, 교육, 복지, 상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을 의미합니다.
직무스트레스 관리의 주요 목표, 정신건강
공무원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업무상 질병에 대한 공무상 재해 승인 현황을 살펴보면 2022년 기준으로 정신질환이 274명으로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뇌·심혈관질환은 111명으로 3위였습니다.
특히, 정신질환으로 인한 사망(자살)은 1만명 당 0.17명으로 산업재해보다 약 7배, 뇌·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사망은 1만명 당 0.34명으로 산업재해보다 약 1.4배 높았습니다.
공무원 자살의 구조적 이유로 권위주의적 조직문화, 과도한 업무와 책임 전가, 민원으로 인한 감정노동, 인사평가 압박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공무원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분위기도 큰 영향을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공무원의 자살사건들은 공무원 조직이 전반적인 위기에 처해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구성원들의 사기저하와 우수한 인재의 공직기피현상이 확산되면서 조직 전반의 생산성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심리재해는 하나의 사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저에 수많은 번아웃 상황이 있고, 사건이 발생한 이후 조직에 미치는 여파가 큽니다.
직무스트레스 평가도구,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직무스트레스의 조직적 개선을 위해 직무스트레스 평가도구는 유용한 수단이 됩니다. 직무스트레스 평가도구는 위험성 평가를 위한 도구이면서, 조직에서 개선하려는 목표를 반영합니다.
만약 어떤 조직이 사용하는 직무스트레스 평가도구에 ‘직무요구도’라는 항목이 있다면, 이는 우리 회사의 직원들의 직무요구도 수준을 파악하여, 이를 적정한 수준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의도를 갖는 것입니다.
따라서 범용 직무스트레스 평가도구를 사용한다면, 개별 조직의 상황에 맞춘 특이적 문항이나 조직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항목을 추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직무스트레스 평가도구는 그 자체로 교육이 됩니다. 개별 설문문항이 모여 상위개념을 형성합니다. 요인들이 갖고 있는 원리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조직적 개선을 위한 자극이 됩니다. 따라서 평가결과를 공유하거나, 개별적으로 알려주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노동자들이 업무요구도, 업무자율성, 보상, 지원, 조직공정성이라는 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것으로 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직무스트레스 개입에 관하여는 8월 12일자 오이레터 <직무스트레스, 평가만큼 중요한 다음 단계는?>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직무스트레스 측정도구로 KOSSR19 추천
직무스트레스 평가를 위해 어떤 도구를 사용하고 계시나요?
직무스트레스 측정도구는 변화하는 산업구조, 인구학적 특성, 주요 스트레스 요인의 변화에 따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될 필요가 있습니다. KOSS는 2005년에 공개된 후 업데이트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가, 2018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감정노동 종사자의 스트레스 평가도구 개선 및 활용방안 마련(연구책임자 장세진)"에서 기존 KOSS가 재검토되었으며, KOSSR19로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KOSSR19에는 “감정노동연계형”이라는 명칭이 부여되어 있으나, 사실은 감정노동자를 대상으로만 국한된 도구는 아닙니다. KOSSR19는 한국형 직무스트레스 평가도구의 가장 최신 버전으로 다양한 직종에 보편적으로 사용가능합니다.
[논문] Occupational stress (KOSS®19): scale development and validation in the Korean context. 2025
[KOSHA Guide] E-G-2-2025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건강장해 예방 기술지원규정
직무스트레스 반응척도로 번아웃평가도구 추천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번아웃을 제11차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11)에 '직업적 현상, 혹은 직업 관련 증후군'으로 포함하였습니다.
번아웃은 심리재해의 전단계를 반영하기 때문에 직무스트레스 개선의 목표를 심리재해예방을 목적으로 한다면, 가장 적절한 결과지표가 됩니다.
WHO는 번아웃의 세 가지 증상을 제시하여, 번아웃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통일하였습니다.
'에너지 고갈과 피로감',
'직장이나 업무 관련해 거부감이나 부정적인 생각 증가',
'업무에 대한 효율 감소'
설문조사를 받는 분들의 입장에서는 우울증 설문지에 답하는 것보다 번아웃 설문지에 답하는 것이 부담이 적습니다. 게다가 번아웃은 직무스트레스로 인한 영향을 잘 반영합니다. 심리재해는 드문 사건이기 때문에, 이러한 심리재해의 사전단계인 번아웃을 평가하는 것이 적절한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의 정의에 기반한 번아웃 평가도구 한국어판이 개발되어 있으므로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논문] Development of Korean Version Burnout Syndrome Scale (KBOSS) Using WHO’s Definition of Burnout Syndrome. 2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