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더 많이 발생한 백신 부작용
2021년 2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코로나19 백신 부작용이 여성에게 더 많이 나타난다고 발표했습니다. CDC가 2020년 12월 14일부터 2021년 1월 18일까지 약 한 달간 모더나와 화이자 백신을 접종한 미국인 1,370만 명의 데이터를 조사한 결과, 백신 부작용을 신고한 사람 중 79.1%가 여성이었고, 아나필락시스가 발현됐던 66명 중 63명이 여성이었습니다. 2021년 8월 스위스 여성 두뇌 프로젝트(WBP) 연구팀은 모더나, 화이자, 얀센, 아스트라제네카가 긴급 사용 승인을 받기 위해 유럽 식품의약품기구(EMA), 캐나다 보건부,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 총 3개 기관에 제출했던 임상 시험 3상 보고서를 분석했습니다. 연구팀은 당시 4개의 백신이 각 기관의 기준에 맞춰 성별에 따른 안전성을 분석했는지 여부를 검토하였고(Safety subgroup analyses by sex? ) 모더나-FDA, 얀센-EMA 외 성별에 따른 안전성 분석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보건과학기술분야 연구 영역에서 성별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 경향은 낯선 것이 아닙니다. 암컷 동물에 대한 전임상시험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아 뒤늦게 여성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되는 문제, 또 골다공증처럼 특정 성별, 특정 연령대에서만 호발한다고 알려져 있어 그에 해당하지 않는 환자들의 경우 진단 및 치료가 지연되는 결과가 발생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논문] COVID-19 vaccines: Considering sex differences in efficacy and safety
[논문] Sex bias in neuroscience and biomedical research
성인지적 연구는 당연한 흐름
2022년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논문을 투고할 때 갖춰야 하는 요건을 강화하는 새로운 논문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습니다. 이제 네이처에 논문을 투고하려면 연구 설계에서 성별을 고려했는지 여부와 그 방법을 명시해야 하고, 성별 및 젠더 분석이 수행되지 않았다면 그 이유를 밝혀야 합니다. 연구 결과가 하나의 성별에만 적용되는 경우에는 제목 및/또는 초록에 언급할 것을 요구합니다. 네이처지는 사설에서 ‘연구 설계의 투명성을 높이고 궁극적으로 결과를 더욱 정확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연구대상에 특정 성별을 포함하는 것, 그리고 이를 표기하는 것은 일견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연구 대상자에 여성과 남성을 모두 포함하기만 하면, 성인지적인 연구가 완성되는 것일까요? 성인지적 연구란 무엇인지, 내 연구가 성인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잠시 들여다보기로 합니다.
[사설] Nature journals raise the bar on sex and gender reporting in research
‘성 인지(性認知)’란?
성 인지적이라는 개념은 1995년 북경에서 열린 세계여성대회에서 채택된 북경행동강령의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전략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이 강령을 관통하는 핵심논리는 1) 정책 등의 의사결정에 여성이 포함되도록 한다는 것과 2) 정책에 여성의 관심사나 시각이 반영되도록 할 것, 3) 이들 정책의 결과를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중심적으로 평가할 것 등입니다. “성 인지적”이라는 개념은 정책, 법령 등에서 “성의 차이와 성의 형평성을 고려한다” 혹은 “여성들의 경험과 요구의 특수성을 반영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성 인지성(gender sensitivity), 성 인지적 관점(gender sensitive perspective)은 정책이나 프로그램, 혹은 연구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쟁점이나 변수로 생물학적 성(sex), 사회적 성(gender)를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보건과학기술분야의 성인지적 연구
과학기술 분야의 성인지적 연구란 과학기술 연구주체의 성적 불균형 해소, 연구결과의 수혜자 간 성적 불균형, 그리고 연구대상자의 성적불균형의 시정을 의미합니다. 일례로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1994년 연구지원서를 갱신하면서 연구대상 인구의 성, 인종, 구성비를 지원서에 밝히도록 하였습니다. 더불어 “여성과 소수자를 피험자로 포함시키는 임상연구 가이드라인 (NIH Guidelines on the Inclusion of Women and Minorities as subjects in Clinical Research)”에 따라 여성이나 소수 인종에게 영향을 주는 여러 건강 문제에 대한 지식을 축적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연방보건부는 보건 영역에서 성별 영향 평가도구로서 성별기반분석(Gender-based analysis plus : GBA pluss).를 개발, 적용하고 연구제안서에 성차 및 그와 교차하는 다른 특성들(인종, 연령 등)의 영향을 포함시켰는지를 선정 심사기준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노력은 결국 과학적 증거를 제공하는 연구들이 성 인지적으로 설계, 수행되어 소수자들에게 효용성있는 보건정책의 개선을 마련하기 위해 필수적입니다.
[가이드라인] Inclusion of Women and Minorities as Participants in Research Involving Human Subjects
[웹사이트] Health Canada의 Gender-based analysis plus
'그래서 성인지적인 연구가 도대체 뭡니까?' 라고 물으신다면
2017년 수행된 한 연구는 바로 그 질문에서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연구의 저자들은 성 인지적(sex/gender sensitive)인 건강역학연구의 모범사례를 제공하고자 마음 먹었습니다. 저자들은 국제학술지 Journal of Epidemiology & Community health (JECH)에 2006년부터 2014년까지 게재된 논문들에 대하여 체계적 문헌검토를 수행했습니다. 이들은 성 /젠더 측면을 명시적으로 다루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연구, 즉 제목에 ‘sex’나 ‘gender’ 를 포함하는 연구들을 포함하여 연구의 배경, 연구설계, 통계적 분석, 고찰 영역에 걸쳐 평가했습니다. 성/젠더 개념이 연구과정을 이끌어갈 경우 ‘모범사례’, 성/젠더 측면이 일부 다루어지면 ‘중간’, 성/젠더에 따른 차이나 유사성이 다루어지지 않거나 정당한 설명 없이 제시되기만 한 경우 ‘모범사례도 중간도 아님’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이런 평가기준을 통해 저자들은 두 편의 모범논문을 추려냈고, 이 과정을 논문으로 발표해 성인지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어떤 요인들이 고려되어야 하는지를 실효성 있게 보여줍니다.
[논문] Examples of sex/gender sensitivity in epidemiological research: results of an evaluation of original articles published in JECH 2006–2014
지금 내 연구는 성인지적으로 진행되고 있을까?
1993년 European Journal of Public Health의 편집자 사설에서 Stephenson과 McKee는 “역학에서 성별은 거의 항상 잠재적 교란 변수로 취급되며, 그 영향이 있는 경우 통계적으로 통제한 다음 무시당한다. 건강 자체의 성별 차이를 다시 한 번 살펴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성별 편견은 연구 결과의 타당성을 손상시켜 역학 연구의 질에 영향을 미치고, 여성(또는 남성)이 질병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부정확한 결론과 부적절한 치료 결정으로 이어진다고 덧붙인 바 있습니다. 이 글의 제목은 “Look twice”였습니다. 이후 약 30년이 흘러 우리 책상 위에 놓인 연구는 그런 성별 편견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걱정되는 여러분을 위한 가이드라인/체크리스트를 소개합니다.
[사설] Look twice | European Journal of Public Health | Oxford Academic (oup.com)
성 및 젠더 평등에 관한 연구지침
2023년 세계보건기구는 성별 및 젠더 데이터에 대한 산발적인 보고를 해결하기 위해 SAGER(Sex and Gender Equity in Research Guidelines)지침을 채택했습니다. 2016년에 처음 발표된 SAGER 지침은 현재 국제 의학 저널 편집자 위원회의 권장 보고 지침에 포함되어 있으며 주요 학술 출판사 및 과학 저널에서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 지침은 성별, 젠더 관련 데이터를 반드시 보고할 것을 장려하고 연구 설계, 데이터 수집, 분석 및 출판에 성별과 젠더의 차원을 포함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가이드라인] Sex and Gender Equity in Research: rationale for the SAGER guidelines and recommended use
성별 특성 등을 고려한 연구 가이드라인 : 의·생명과학 분야
우리나라에서는 한국과학기술 젠더혁신센터에서 동물연구, 세포연구, 사람연구를 나누어 성별 특성 등을 고려한 연구 가이드라인을 발간하고 있습니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SAGER가이드라인과는 달리 연구 설계, 문헌검토, 연구수행, 결과 분석 및 보고(논문발표) 단계에 따라 고려해야 할 사항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진행 시 성별 뿐만 아니라 젠더를 고려할 것을 명시합니다.
[가이드라인] 성별 특성 등을 고려한 연구 가이드라인:의·생명과학 분야
직업환경의학 영역에서 성인지적 연구
모든 영역이 그렇겠지만 특히 직업환경의학 영역에서의 성 인지적 검토는 결과변수 뿐 아니라 노출변수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많은 직업영역에서 성별분업은 숨쉬듯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조선소 도장공, 건설현장 철근공과 같은 남성 절대다수의 직종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은 같은 직종의 남성들과는 조금 다른 업무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당영역에서 소수의 여성들이 하고있는 ‘아줌마들의 일’, ‘여자들 일’로 언급되는 일들이 사실은 어떤 노출을 포함하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또 간호사처럼 여성 절대다수의 직종에서 남성간호사가 하고 있는 일들이 어떤 것일지도 당연히 면밀한 고려가 필요한 지점일 것입니다. 또 미세먼지, 미세플라스틱처럼 환경성 유해인자의 노출경로를 검토할 때 역시 성인지적 접근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분석에 사용하기에는 특정 성별 대상자가 부족하거나, 성별을 반영하는 공식적인 데이터가 아직 충분히 만들어져 있지 않은 등 다양한 한계를 경험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성인지적인 연구를 위한 노력은 더 정확한 연구를 위한 한걸음일 것으로 믿고, 더 정확한 연구를 위한 작은 노력들을 모아가기를 희망합니다.
글쓴이: 정지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젠더와 노동건강권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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