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이레터가 직업건강탐구생활, 환경건강탐구생활에 이어 마음건강탐구생활을 시작합니다. 마음건강탐구생활에서는 일터에서의 정신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이 주제에 관한 구독자님들의 참여와 기고도 기다립니다. 먼저 이전 오이레터에 실렸던 일터정신건강에 관한 글을 소개합니다.
오늘은 첫번째 글로 일과 삶의 '중용'에 관한 에세이를 전해드립니다.
일과 삶의 조화?
하이브의 방시혁 대표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워라밸에 대한 질문을 받자, "나는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과 삶의 조화(Harmony)라는 표현을 사용한다"라고 답변을 합니다. 그 이후 워라'밸' 대신 워라'하'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합니다.
'균형(balance)'와 '조화(harmony)'는 무슨 차이일까요? 사람마다 그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다만, 워라밸은 일과 삶을 대립적으로 보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에 쏠린 무게중심을 삶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이 단어가 사용됩니다. 반면 조화는 일과 삶을 대립적인 것으로 보지는 않고, 스며들 수 있는 것으로 봅니다. 이 단어는 일의 소중함을 강조하려는 지향성이 나타납니다. 어느 쪽이 더 마음에 와닿습니까?
일이 가져다 주는 보상
일은 한 사람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 줍니다. 우리는 일을 통해 어떤 보상을 얻게 될까요? 직무스트레스 모형 중 하나인 '노력-보상 불균형 모델'을 소개한 요하네스 지그리스트는 일을 통해 얻게 되는 3가지 보상을 제시합니다.
1. 경제적 보상 (Financial reward)
2. 경력의 발전 (Status-related reward)
2. 자존감과 인정 (Socioemotional reward)
우리는 일이 가져다 주는 보상을 얻기 위해, 노-오력을 합니다. 반대로 노력을 하다보면 보상이 뒤따르기도 합니다.
워커홀릭
일에 미친(?)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워커홀릭(workaholic)이라고 합니다. 워커홀릭은 '몰입하고 있고, 빠져들어 있다'라는 긍정적인 뉘앙스, 그리고 '과하다, 중독되어 있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모두 갖습니다. 우리 말로도 "미쳤다!"라고 말하면 '대단하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됩니다. 그런데 워커홀릭이 '일중독'으로 번역되면, 부정적인 의미만 남습니다. 그래서 워커홀릭에서 과도함을 덜어내고, 긍정적인 의미만 남긴다면, 가장 적합한 용어로는 일몰입(work engagement)이 될 것 같네요.
일몰입(work engagement)
몰입은 자신이 원하는 어느 한 곳에 정신이 집중되어 즐거움을 얻는 상태를 말합니다. 일몰입이나 학습몰입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되는데, 이 경우에서 몰입은 주로 사람의 관심과 참여도를 나타내는 'engagement'라는 단어로 번역됩니다. 반면 몰입은 'Flow'라는 단어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이는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에 몰입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는 상태를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일몰입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설문도구인 Utrecht Work Engagement Scale (UWES)을 살펴보면, 일몰입은 활력, 일에 대한 헌신, 빠져듬이라는 3가지 하위개념으로 구성됩니다.
번아웃(burn-out)
번아웃은 직무스트레스의 부정적인 결과물입니다. 번아웃은 일몰입과 반대개념으로 구성됩니다. 바로 활력에 반대되는 탈진, 헌신에 반대되는 일에 대한 냉소, 그리고 빠져듬 대신 능률의 저하죠. 따라서 일터에서의 정신건강은 번아웃에 이르지 않도록 하면서, 일몰입 상태가 되도록 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하지만, 일에 몰입하려면 외적 환경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적정한 업무량, 서로 존중하는 직장문화, 공정하고 합리적인 일처리와 업무분담, 업무추진과 발전을 위한 지원, 적절한 보상이이 없다면 일몰입은 매우 어려워지고 번아웃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노력-보상의 불균형'이 유지되는 이유
만약 업무요구 또는 노력에 비해 적절한 지원이나 보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요?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 일을 덜하려고 하거나, 심할 경우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노력-보상은 다시 균형을 찾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요하네스 지그리스트는 노력-보상의 불균형 상태가 그대로 유지되도록 만드는 3가지 요인이 있다고 말합니다.
1. 노동시장에서 대안적 선택이 없는 경우 (dependency)
2. 미래의 이익을 기대한 전략적인 선택 (strategic choice)
3. 과잉 헌신 (overcommitment)
이 중에 1번은 취약한 노동자들에게 노력-보상 불균형을 유지시키는 주요 원인입니다. 2번은 도제식 직업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세번째가 바로 과잉헌신(overcommitment)입니다. 이건 왜 나타나는 것일까요?
과잉헌신(overcommitment)
과잉헌신은 너무나 많은 책임과 의무를 지는 것을 말합니다. 비슷한 현상으로 "과잉모성" 이 있습니다. 항상 자녀 곁에 머물며 모든 걸 헌신적으로 채워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녀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책감이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일에 관하여 자신이 과잉헌신에 해당되는지 파악할 수 있는 설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혹시 당신이 과잉헌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보십시오.
1. 시간압박에 쉽게 압도된다
2. 아침에 일어나면 일에 대한 걱정부터 시작한다
3. 집에 오면, 일을 생각하지 않고 쉽게 이완된다 (역문항)
4. 일에 너무 희생한다는 말을 듣는다.
5. 일이 나를 놔주지 않아, 잠 잘 때도 생각한다
6. 오늘 해야할 일을 미뤄야 한다면, 잠을 자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위 설문의 내용을 보면 일중독과 유사합니다. 가령 일중독 설문지 중 하나인 Dutch Work Addiction Scale’ (DUWAS)는 과도하게 일하기, 강박적으로 일하기라는 2가지 하위개념으로 구성됩니다. 그래서 일몰입과 일중독은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고, 동전의 양면 같기도 합니다. 두가지 개념을 설문조사를 통해 구분해 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몰입과 구분되는 과잉헌신/일중독의 핵심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과도한 업무로 부정적인 감정과 좌절감에 휩싸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에서 벗어날 능력이 부족한 상태(inability to withdraw from work)"입니다.
과잉헌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지그리스트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직업을 통한 성취를 원하기 때문에, 일에 헌신하려는 성향을 갖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성이 과잉상태가 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인정을 받을 수 없거나 실패할 것이라는 두려움
2.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나 업무수행에 필요한 시간에 대한 과소평가
3. 과도한 책임감이나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성격
이로 인해 지나치게 많은 일을 약속합니다. 그 결과 자신의 삶에서 꼭 필요한 충분한 잠과 휴식, 사회적 관계, 균형잡힌 식사와 운동을 위한 시간을 포기하게 됩니다.
일과 삶에도 '중용'
중용(中庸)은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으며 어느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중용이라는 개념에는 '조절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영어로 가장 가까운 말은 "moderation"이라고 합니다. 중용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2가지 전제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자신의 목표가 명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일과 삶의 조화가 목표 또는 지향이 될 수 있습니다. 또는 어떤 경우에는 삶의 일부분을 포기하고 일에 더 많은 것을 바치겠다는 지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반대로 가능하죠. 다만 이것은 외부의 간섭없이 독립적인 결정이어야 합니다.
두번째는 변화에 적정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일과 삶의 '중용'은 6시 칼퇴근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일에 몰입하다가 퇴근이 늦어질 수 있고, 어떤 프로젝트를 위해 주말에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하여 건강과 여유를 잃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일을 과감하게 줄일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일과 삶의 중용이 될 것입니다.
글쓴이: 송한수(오이레터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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