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리얼리즘의 거장 추아 미아 티의 작품 '구내식당의 노동자들'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요? [예술과 직업건강 탐구]
구내식당의 노동자들(Workers in a Canteen), 19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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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a Mia Tee. Workers in a Canteen. 1974. Oil on canvas, 88.5 x 126.5 cm. National Gallery Singapore, Singap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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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식당 문을 열고 갓 들어선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생생한 공간, 화면을 가로지르는 대각선 구도가 주는 역동성 속에서 70여 명의 노동자가 뿜어내는 열기와 허기가 화면 밖까지 전해지는 듯합니다. 이 강렬한 유화 작품은 싱가포르 리얼리즘의 거장인 추아 미아 티(Chua Mia Tee, 蔡名智)가 1974년에 그린 〈구내식당의 노동자들(Workers in a Canteen)〉입니다. 캔버스에 그린 유화로 작가가 싱가포르 국립미술관에 기증했습니다.
이 그림의 실제 무대는 1970년대 싱가포르 중화학공업 육성과 산업화의 심장부였던 '주롱 조선소(Jurong Shipyard)'의 점심시간입니다. 식당 안에는 흰 작업모와 비슷한 색상의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앞쪽에는 식사를 거의 마친 듯 빈 그릇과 젓가락이 흩어져 있고, 노동자들은 허리를 굽혀 남은 음식을 먹거나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뒤쪽 배식대 앞에도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화면에는 70여 명의 노동자가 등장하지만 뚜렷한 주인공은 없습니다. 앞쪽 인물들의 넓은 등과 굽은 어깨는 얼굴보다 더 크게 묘사되어 있으며, 개개인의 정체성보다 이들이 함께 수행하는 육체노동을 대변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싱가포르 산업화를 떠받친 조선소 노동자 집단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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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싱가포르는 빠른 산업화와 도시화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 작품을 젊은 국가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가능하게 한 주롱 조선소 노동자들의 기여를 보여주는 그림으로 설명합니다.
작가도 이 그림의 핵심 주제, 즉 작품의 '영혼'을 중국의 대문호 루쉰(魯迅)의 명언으로 설명하곤 했습니다.
“먹는 것은 풀이지만, 짜내는 것은 젖이다(吃进去的是草,挤出来的是奶).”
노동자들이 구내식당에서 삼키고 있는 소박한 한 그릇의 밥(풀)이, 주롱 조선소라는 거대한 용광로를 거쳐 싱가포르의 화려한 중화학공업 성장(젖)으로 치환되고 있음을 화가는 웅변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노동자들이 마주한 식탁 위의 밥상은 보잘것없고 소박할지언정, 그들이 육체노동을 통해 사회에 제공하는 가치는 무한히 숭고하고 가치 있다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향한 작가의 깊은 존경과 찬사가 담겨 있는 알레고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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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장의 안전보건관리는 대개 생산라인이나 기계, 화학물질, 인간공학적 신체부담, 소음과 분진이 발생하는 장소에 집중됩니다. 하지만 노동자가 식사하고 쉬는 공간도 넓은 의미의 업무환경입니다.
조선업은 강도 높은 육체노동은 물론, 추락, 질식, 용접흄, 중량물 취급 등 수많은 물리화학적 위험 요인이 도사리는 대표적인 고위험 업종입니다. 온몸의 근육을 쥐어짜며 땀을 흘린 노동자들에게 구내식당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장소를 넘어, 누적된 신체 피로를 회복하고 다음 작업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유일한 '복지 공간'입니다. 따라서 구내식당은 단순히 음식을 판매하고 섭취하는 장소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충분한 좌석과 이동 공간, 적절한 환기와 냉방, 깨끗한 식수와 손 씻기 시설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기름이나 분진, 화학물질이 묻은 작업복과 개인보호구가 식사 공간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보관 장소와 동선도 분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식당의 수용인원이 실제 이용자 수에 비해 부족하지 않은 지, 교대조와 협력업체 노동자도 불리함 없이 이용할 수 있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그리고, 식당의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심리적 환경도 중요합니다. 이탈리아의 한 산업체에서 남성 생산직 노동자 141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노동자들이 구내식당을 회복에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평가하고 조직의 지원을 느낄수록, 높은 업무 요구와 피로 사이의 연관성이 약하게 나타났습니다.
좋은 식당은 비싼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땀을 식히고, 편안히 앉아 음식을 먹고, 동료와 대화하며 잠시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장소가 좋은 식당입니다. 구내식당의 상태는 조직이 노동자의 회복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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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로기준법」 제54조는 사용자가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그러나 서류상 주어진 휴게시간과 노동자가 실제로 회복에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반드시 같지 않습니다. 작업을 멈추고 식당까지 이동하고, 오염된 손과 얼굴을 씻고, 배식을 기다리고, 빈자리를 찾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식사 중 업무 연락을 받거나 다음 공정을 준비해야 한다면 몸은 식탁에 앉아 있어도 일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특히 대규모 사업장에서 모든 노동자의 점심시간이 비슷하다면 식당이 한꺼번에 붐빌 수밖에 없습니다. 정해진 식사시간이 짧을수록 노동자는 음식을 빨리 먹어야 하고, 식사를 마친 뒤 몸을 쉬게 할 시간은 줄어듭니다. 그림 속 노동자들도 서로 어깨를 맞댄 채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릇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빠르게 먹고 있고, 뒤편에는 아직 음식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근무 후에도 피로가 쉽게 가시지 않아 회복의 필요성이 커지는 상태를 직업보건 연구에서는 ‘회복 필요도(need for recovery)’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여러 직종의 노동자를 조사한 연구에서는 높은 업무 요구와 회복 필요도가 관련되어 있었으며, 높은 회복 필요도는 이후의 수면 문제, 정서적 소진, 주관적 건강문제 및 병가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노동으로 발생한 부담이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채 다음 근무로 이어지는 상황이 반복되면 일시적인 피로가 장기적인 건강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휴게시간의 질을 평가할 때에는 몇 분이 주어졌는지 만이 아니라, 노동자가 실제 업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 앉아서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었는지, 식사 후 잠시라도 몸과 마음을 회복할 시간이 있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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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아 미아 티는 1931년 중국 광둥성 산터우에서 태어나 1937년 중일전쟁을 피해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로 이주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적 재능을 보인 그는 난양예술아카데미(NAFA)에서 수학한 후 동교에서 강사로 일하며 후학을 양성했고, 평생을 싱가포르 시각 예술 발전에 헌신한 공로로 2015년 싱가포르 최고 권위의 문화 훈장(Cultural Medallion)을 받았습니다. 그는 1956년 결성된 적도미술연구회(Equator Art Society)의 창립 멤버이기도 했는데, 이 단체의 화가들은 대중에게 이상적인 가치나 미화된 풍경을 강요하는 예술을 거부하고, 노동계급을 비롯한 민중의 거친 삶과 혹독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화폭에 담아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이들의 예술적 철학이었습니다.
싱가포르 국립미술관은 지난 2021년, 그의 90세 생일을 기념하여 《Chua Mia Tee: Directing the Real》이라는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로 평가받지만, 현실을 보이는 그대로 복사하는 것이 사실주의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추아 미아 티는 화가를 작가이자 감독이며 배우에 비유한 바 있습니다.
그는 노동자를 비참한 피해자로만 그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산업화의 영웅으로 이상화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먹고, 이야기하고, 피곤해하고, 다시 일하러 돌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화면 중앙에 놓았습니다. 국가의 성장을 말할 때 쉽게 배경으로 밀려나는 사람들을 그림의 주인공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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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일터는 생산설비만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 노동자가 제대로 먹고, 물을 마시고,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며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는 곳 까지가 일터입니다.
화려한 산업적 성취의 결과물에만 환호할 것이 아니라, 무대 뒤편에서 좁은 식탁에 기대어 허기를 달래는 노동자들의 건강과 복지, 그리고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끝까지 살피고 보듬는 것. 그것이야 말로 오늘날 우리의 직업보건이 나아가야 할 이정표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 작품은 현재 싱가포르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Singapore)에 소장되어 있으니, 머지않은 미래에 싱가포르를 방문하시게 된다면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감상하시고 나서, 그 성장의 주역들이 숨 쉬던 이 주롱 조선소의 식탁을 마주해 보시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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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National Gallery Singapore. Chua Mia Tee: Directing the Real. Exhibition materials and media release, 2021. • National Gallery Singapore. Workers in a Canteen, Collection information. • Bellini D, Hartig T, Bonaiuto M. Social support in the company canteen: A restorative resource buffering the relationship between job demands and fatigue. Work. 2019;63:375–387. doi: 10.3233/WOR-192944. • Sluiter JK, de Croon EM, Meijman TF, Frings-Dresen MHW. Need for recovery from work related fatigue and its role in the development and prediction of subjective health complaints. Occup Environ Med. 2003;60 Suppl 1:i62–i70. doi: 10.1136/oem.60.suppl_1.i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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