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학적 노출표지자 검사는 노출평가도구일까? 진단도구일까? 생물학적 노출 지표(Biological Exposure Index®)에 대한 유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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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라 돈슈(大原呑舟) 《코끼리를 감정하는 맹인들》(일본, 19세기 초). 이미지:브루클린 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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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검진 기관이 오프셋 인쇄업 종사자 10명에게 특수건강진단을 시행했다고 상상해 봅시다. 기관에서는 사전조사를 하면서 사업장이 제공한 작업환경측정 결과표를 검토했고 측정 항목에 톨루엔이 있어서 톨루엔을 대상 유해인자로 선정했습니다. 2025년 「근로자건강진단 실무지침(이하 실무지침)」에 따르면 톨루엔의 "생물학적 노출 지표"는 작업 종료 시 채취한 소변의 o-크레졸이고 기준값은 0.8 mg/g Cr입니다 (1). 문진할 때 특이점은 없었지만, 요중 o-크레졸 검사 결과를 보니 10명 중 6명이 기준값을 넘었고, 그중 2명은 2 mg/g Cr을 넘었습니다. 이 사업장은 예년에도 요중 o-크레졸 검사 결과에서 기준값 초과자가 있었던 사업장입니다. 그래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좀 더 신경을 써서 판정했습니다. 2 mg/g Cr을 넘으면서 혈청 ALT가 80 IU/L을 넘은 1명에게는 D1을, 나머지 5명에게는 C1을 주었습니다. 간기능검사 중에서 AST, ALT, GGT가 1차 검사항목이었고 간담도계는 톨루엔의 표적 장기이기 때문에 유기용제인 톨루엔에 의한 간독성을 의심한 것입니다.
내심 기준값의 두 배를 넘은 다른 1명에게도 D1을 주어 근로자를 보호하고 사업장이 더 강한 대책을 마련하게 하고 싶었습니다만, 실무지침에는 톨루엔에 대해서는 생물학적 노출 지표만으로는 D1을 줄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임상 검사에 이상이 없었던 1명에게 C1을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D1 판정을 계기로 사업장에 항의가 있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지방고용노동청 산업안전보건감독관이 사업장을 점검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사업장과의 일부 갈등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판정의는 지침에 맞춰 판정했고, 오랫동안 보아왔던 사업장에 꼭 필요한 조치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독관이 사업장에 가보니, 스무 명 남짓한 근로자 가운데 열다섯 명가량이 외국인이었습니다. 잉크와 시너, 세척제의 물질안전보건자료는 수백 쪽씩 갖춰져 있었고, 경고표지도 붙어 있었습니다. 덜어 쓰는 분사 용기에도 스티커가 있었고, 벽면 환기구도 일정 유속 이상으로 작동했습니다. 톨루엔에 대한 작업환경측정 결과도 기준치 미만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감독관은 예상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보았고, 담당자에게 교육과 사후관리를 잘 하도록 당부했습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묘사한 이 풍경에서 산업보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 것처럼 보이십니까? 실무지침에서 톨루엔에 대한 C1 기준뿐만 아니라 D1 기준까지 마련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상황이었을까요? 하나씩 떼어놓고 보면 산업보건 시스템에서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원칙을 지킨 상황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마치 맹인이 코끼리를 만지듯이 각 요소가 전체를 보지 못하는 잘못된 인식론을 통해 이해되면 잘못된 결과를 도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특수건강진단을 둘러싸고 그러한 인식론을 구성하고 있는 각각의 요소들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그리고 이번 글과 이어지는 글들을 통해서 어떤 점을 어떻게 개선하면 좋을지 하나씩 짚어보려 합니다. 가장 먼저 첫 번째로 생물학적 노출 지표에 대해서 유감을 표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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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타분한 접근이지만, 도대체 "생물학적 노출 지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일단, 2025년 실무지침 제1권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생물학적 모니터링은 혈액, 소변, 모발 등 생체시료로부터 유해물질 그 자체, 또는 유해물질의 대사산물 또는 생화학적 변화산물 등 '생물학적노출지표(물질)'를 분석하여 유해물질 노출에 의한 체내 흡수정도 또는 건강영향 가능성 등을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생물학적 노출 지표"를 영어로 옮기면 Biological Exposure Index®가 되고, 대부분 흔히 BEI®로 줄여 씁니다. 그런데 여기서 심각한 문제가 하나 발생합니다. 제목에서 의도적으로 ®을 계속 붙인 것에서 눈치채셨겠지만, Biological Exposure Index®, 줄여서 BEI®는 미국산업위생전문가협회(American Conference of Governmental Industrial Hygienists; ACGIH)의 등록상표입니다. ACGIH는 (비영리기관이지만) 공식 정부 기관이 아니라 민간 기관이며, BEI®나 TLV®를 일정한 계획에 따라 개정하고, 그 결과는 개별 매뉴얼을 구입하거나 구독해서 저작권을 지불하고 사용하도록 합니다 (2). 그러니까 "유한킴벌리 주식회사"에서 만드는 미용티슈가 "크리넥스"이고, 아마 한국 사람이라면 눈앞에 상자에 "모나리자"라는 상표를 보고도 "크리넥스 한 장 뽑아 달라"고 하지 "모나리자" 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나리자"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미용티슈를 팔아야지 "크리넥스"를 팔면 안 됩니다.
각 기관 또는 각국 정부는 대부분 각각의 연구 결과를 통하여 근거를 마련하고 노출 기준을 설정합니다. 예를 들어, 독일의 생물학적 허용농도(BAT)는 독일 연구재단(DFG)을 통해 기금을 지원하는 독립된 연구 기관을 통해 발표합니다 (3). 물론 다른 기관이 만든 수치를 참조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값이 우리 노출기준과 우리 노동자에게도 유효한지를 따로 확인한 다음의 일입니다. 별도의 연구 없이 ACGIH의 값을 그대로 옮겨 적는 것은, 상표를 빌려 쓰기 이전에 근거를 빌려 쓸 수 없다는 상식의 문제입니다.
지금 실무지침은 ACGIH의 BEI®, 독일 DFG의 BAT, 국내 연구 결과를 참조해 만든 수치를 한데 묶어 "생물학적 노출 지표"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생물학적 노출 지표"는 영어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요? ACGIH의 Biological Exposure Index®는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요? 더 나아가서 다른 국가나 기관에서 만든 지표를 참조해서 수치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러한 개념에 대한 과학적 근거 마련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다음 연재에서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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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의를 진전시키기 위해 조금 더 근본적인 개념부터 명확히 해보겠습니다. 톨루엔이 인체에 노출되고 대사되면 소변으로 o-크레졸 또는 마뇨산 등의 물질이 배출됩니다. 이때 노출로 인하여 배출되는 생체 물질인 o-크레졸, 마뇨산 등을 톨루엔에 대한 "노출 바이오마커(exposure biomarker)"라고 합니다. ACGIH는 직접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전문가 위원회가 이미 출판된 동료심사 문헌을 검토하여 TLV®라는 공기 중 농도 권장 노출 수치를 정하고, 그 농도만큼 호흡기로 노출된 사람에게서 어느 정도의 바이오마커가 배출되는지를 보고한 연구들을 다시 검토합니다. 배경 노출과 생활환경의 영향, 지표의 민감도와 특이도까지 함께 따져 가장 적합한 노출 바이오마커와 그 값을 고르고,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골랐는지를 항목마다 도큐멘테이션으로 공개합니다. 그것이 바로 BEI®입니다. 단순한 기준이 아니라 그 값을 고르기까지의 검토 과정 전체가 저작물이고, ACGIH가 저작권을 갖는 것도 그 과정입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또 있습니다. 노출 바이오마커는 건강진단의 판정 기준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BEI®든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제시하는 수치든 뭐든 간에, 노출 바이오마커는 질병을 진단하는 용도가 아닙니다. 진단 바이오마커의 대표적인 예로는 당화혈색소가 있습니다. 당화혈색소가 6.5% 이상이면 어떤 의사라도 자신 있게 당뇨병을 진단하거나 최소한 생활습관 관리를 권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근거는 당화혈색소 자체의 본질적인 특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구집단 단위를 대상으로 한 역학 연구를 통해서 당뇨병의 예후를 가장 잘 개선할 수 있는 경계 수치를 골라낸 것입니다. 심근경색 진단에 쓰던 CK-MB가 심근 트로포닌보다 민감도와 특이도가 떨어진다는 것이 밝혀져 밀려난 것처럼, 역학 연구에 따라 기준값도 바이오마커 자체도 바뀝니다. 노출 바이오마커에 대해서 별도의 이러한 역학 연구가 없다면 당연히 건강진단에도 사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실무지침도 이 원칙을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1권은 C와 D를 표적장기의 이상 징후와 뚜렷한 장해에 따라 판정한다고 적습니다. "생물학적 노출 지표"가 기준값을 넘었다고 비가역적인 건강장해가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도 설명합니다. 그런데 제2권은 생물학적 노출지표가 설정된 여러 유해인자에 사실상 같은 C1 판정 틀을 반복합니다. C1 판정 기준의 ‘첫째’는 임상적 이상과 노출의 관련성을 함께 보지만, ‘둘째’는 “생물학적 노출지표검사 결과 생물학적 노출기준을 넘는 경우”뿐입니다. ‘첫째 또는 둘째’라고 했으니 둘째는 다른 임상적 조건과 독립된 충분조건으로 해석되고, 실무지침을 따르면 의학적 근거 없이 노출 바이오마커만으로 건강을 진단하는 것입니다.
ACGIH의 설명은 더 분명합니다. BEI®는 건강영향의 척도나 직업병 진단에 쓰라고 만든 것이 아니며, 개인의 수치가 BEI®를 넘더라도 건강위험이 커졌다는 뜻은 아닐 수 있다고 밝힙니다. 행정적 조치는 보통 한 번의 결과가 아니라 여러 차례의 채취나 재검 결과에 근거해야 한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연 1회의 소변검사 한 번으로 C1을 부여하고 사후조치를 시작합니다. 이름과 수치는 빌려왔는데 사용설명서는 두고 온 것입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25년 보고서 「생물학적 노출지표의 올바른 적용을 위한 지침 마련」도 기준값 초과가 반드시 건강위해를 뜻하는 것은 아니며, 여러 번 시료를 채취하거나 반복 시료를 분석하고 전문가가 해석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4). 참고로 같은 보고서가 집계한 2024년 결과를 보면, 소변 중 o-크레졸 초과 1,447건 가운데 1,139건이 C1, 22건이 D1이었습니다. 이들에게 톨루엔에 노출되었다는 추정 이외에 어떤 "건강위해"가 있었을까요?
원리적으로, 기준값 초과는 먼저 작업환경과 작업방법을 다시 보라는 의미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개인의 건강관리구분으로 바꾸는 순간 문제는 작업장에서 근로자에게 옮겨갑니다. 환기와 세척 공정을 고칠 일은 재검과 건강상담의 일이 되고, 노출된 사람은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판정을 받은 사람이 됩니다.
물론 여기서 D1으로 판정한다면 아까 밝혔듯이 사업장에 대한 조치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노동자 개인의 건강진단 결과라는 잘못된 인식론으로 인해 출발한 이러한 시스템은 건강근로자 생존 효과만 증폭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위험이 큽니다.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다음 연재에서 깊이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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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코는 코끼리가 아니지만, 코끼리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 하나입니다. 노출 바이오마커의 올바른 측정과 해석은 산업보건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이지만, 지금의 인식은 코끼리 코를 코끼리 꼬리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비록 권위 있는 단체라고 할지라도 미국 민간단체의 상표명을 국가 기관이 그대로 차용하여 쓰고 있고, 노출 바이오마커를 특별한 의학적 근거나 연구 없이 진단 바이오마커로 착각하도록 특수건강진단 체계를 구성하였습니다. 혈압과 공복혈당이라는 진단 바이오마커로 명백하게 진단할 수 있는 고혈압, 당뇨병 진단명과 함께, 미국 ACGIH의 이름을 빌려서 요중 o-크레졸 증가를 판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 가지만 먼저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첫째, 우리 수치에는 우리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남의 상표가 아니라 노출 평가용이라는 성격이 드러나는 독자적인 명칭과 영문 표기를 정해야 합니다. 둘째, 그 이름 아래 놓이는 값에는 근거가 함께 붙어야 합니다. 어느 값을 그대로 채택했고 어느 값을 환산했으며 어느 값을 국내 연구로 만들었는지, 그 근거가 된 국내 연구와 보고서가 무엇인지 항목마다 밝혀야 합니다. 셋째, 노출 바이오마커와 진단 바이오마커를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노출을 가리키는 숫자는 작업환경으로 돌려보내고, 개인의 건강관리구분은 건강영향의 근거 위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특수건강진단에서 가장 중대하고 급한 사항 중 하나는 생물학적 노출 지표에 대한 인식론적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하고 기존 인식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다소 도발적인 방식이 여러 토의를 촉발시키고 좀 더 진전된 결론과 합의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토의를 위해서 아직 많은 논점이 남아 있습니다. 이름과 근본적인 개념을 넘어서 톨루엔 노출 바이오마커로서 o-크레졸과 마뇨산의 의미는 무엇이며, 기준값 0.8 mg/g Cr은 어떤 의미인지, ACGIH가 BEI®마다 붙여 놓은 노테이션은 무엇을 경고하고 있는지, 그리고 검사 항목과 표적 장기는 작동 가능한 임상적 개념인지, C1과 D1 판정이 끝나고 사업장에는 무엇이 남아 있게 되는지 다음 연재에 짚어보고자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납처럼 일부 중금속은 노출 바이오마커이면서 동시에 의학적 판단의 근거로도 쓰입니다. 별도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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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25년 근로자건강진단 실무지침. 제1권 특수건강진단 개요; 제2권 유해인자별 특수건강진단 방법. 울산: 안전보건공단; 2025.
2. American Conference of Governmental Industrial Hygienists. 2026 TLVs and BEIs: based on the documentation of the threshold limit values for chemical substances and physical agents & biological exposure indices. Cincinnati (OH): ACGIH; 2026.
3. Deutsche Forschungsgemeinschaft. List of MAK and BAT values 2025. Report 61. Bonn: Deutsche Forschungsgemeinschaft; 2025. doi:10.34865/mbwl_2025_eng.
4. 최준혁, 이나루, 원용림. 생물학적 노출지표의 올바른 적용을 위한 지침 마련. 울산: 산업안전보건연구원;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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