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이 심리학 용어로 사용되게 된 배경과 맥락은 무엇 이었을까요?
번아웃(Burnout)은 처음부터 심리학 용어가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무언가가 완전히 타버렸다’는 뜻의 일상적인 영어 표현이었고, 로켓공학에서는 연료가 모두 소진된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이 단어가 사람의 마음을 설명하는 용어가 된 것은 1974년 정신과 의사 허버트 프라우덴베르거(Herbert J. Freudenberger)가 발표한 “Staff burn-out”이라는 논문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1970년대 초 미국 뉴욕에서 의료취약계층을 위한 무료진료소 진료 활동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료진료소의 자원활동에 참여했던 동료와 자원봉사자들이 한동안 열정적으로 일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급격히 지치고 무기력해지며 일에 대한 태도가 변해가는 현상을 관찰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이기도 했기에, 그는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 방법을 찾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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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화를 내고, 사소한 압박에도 부담감을 느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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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에 이른 사람에 대한 프라우덴베르거의 관찰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들은 쉽게 화를 내고, 경직되며, 모든 것을 자신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한다. 변화에 대한 제안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조직의 건설적 변화를 방해하게 된다”
프라우덴베르거는 번아웃을 겪는 사람들은 더 이상의 변화를 감당하기엔 너무 지쳐 있고, 지나치게 경직되며, 모든 것을 이미 겪어봤다는 생각에 결국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여기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그 결과 어떤 제안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지친 냉소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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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번아웃에 취약할까요? 프라우덴베르거에 따르면 역설적이게도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 헌신 때문에 번아웃의 덫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의 설명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헌신 때문에 번아웃의 덫에 빠지게 됩니다. 너무 많이, 너무 오랫동안, 너무 강렬하게 일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하고 도와야 한다는 내면의 압박감과 베풀어야 한다는 외부의 압박감을 동시에 느낍니다. 그런데 관리자에게서 더 많은 것을 하라는 추가적인 압박까지 받게 되면, 직원은 삼중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죄책감은 결국 그를 더욱 "베풀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탈진으로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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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우덴베르거가 ‘번아웃’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면, 이를 세상에 널리 알린 사람은 심리학자 크리스티나 마슬라크였습니다. 마슬라크는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200명의 전문직 종사자가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개인 면담을 진행했으며, 광범위한 설문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연구 대상에는 빈곤층 지원 변호사, 의사, 교정시설 종사자, 사회복지사, 정신병원에서 근무하는 임상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 아동보육 종사자, 정신과 병동 간호사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이러한 연구 과정에서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1976년 일반 독자를 위한 잡지 Human Behavior에 「Burned-out」라는 글을 기고합니다. 이 글의 서두에는 한 사례가 소개됩니다.
"크리스마스 직전, 한 여성이 도움을 받기 위해 빈곤층을 지원하는 변호사를 찾아왔다.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던 중, 너무 가난해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 하나도 사줄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젊은 어머니이기도 했던 그 변호사는 당연히 이 여성의 처지에 공감할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는 오히려 그 여성에게 소리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이들 선물이 갖고 싶으면 메이시스 백화점에 가서 훔쳐요! 그리고 잡혀서 법정에서 변호가 필요해지지 않는 한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마세요!"
그 뒤 그 사건을 곱씹어 보면서, 변호사는 자신이 '번아웃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중요한 점은 그 변호사가 원래 냉정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감정노동 속에서 공감 능력이 소진되었다는 점입니다.
마슬라크는 봉사활동가들에게서 발견되었던 번아웃이 다양한 직업군에서도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임을 확인합니다. 번아웃에 이른 사람의 감정은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인 방향으로 옮겨갑니다. 도움이 필요한 서비스 대상자를 경멸하거나 멸시하는 감정이 생기고, 그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거나 거리두려는 경향도 나타납니다. 그 결과 보건 및 복지 서비스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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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슬라크가 설명하는 번아웃에는 서로 맞물린 세 가지 구성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스트레스 반응인 탈진입니다. 하지만 번아웃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둘째는 단순한 스트레스와 피로를 넘어, 부정적이고 냉소적이며 적대적인 감정이 생기는 것입니다. 직장에 대해 "이 직장 따위 집어치워"라는 생각이 들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으며, 제대로 관리받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그곳에 있는 것 자체가 싫어지고 동료들까지도 미워지기 쉽습니다. 이런 감정은 결국 직장에 대한 냉소주의로 이어집니다.
셋째 요소가 더해지면 상태는 더 심각해집니다. 직장에 대해서만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데서 나아가, 자기 자신에게도 부정적인 감정이 향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뭐가 문제일까?" "왜 이 직업을 선택했을까?" "내가 했던 일들 중 일부는 자랑스럽지 않아." "왜 나는 이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걸까?"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마슬라크는 이를 ‘개인적 성취감 또는 직업적 효능감의 저하(reduced personal accomplishment)’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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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열기를 견딜 수 없으면 주방에서 나가라"라는 오래된 격언을 떠올려 보세요. 이는 업무와 개인 사이의 불일치, 즉 격차를 인식하라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네 문제야. 못 하겠으면 나가. 여기 있지 마"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공간 자체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죠. 난방 온도를 낮출 수는 없을까요? 주방을 더 나은 공간으로 재설계할 수는 없을까요?
이 질문은 "누가 약한가"가 아니라 "우리 사업장의 어떤 조건이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가"를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마슬라크는 동료 Leiter와 함께 다음의 6가지 요소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업무량(Workload): 업무 속도와 강도가 회복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는 지속적 압박이 있는지 살펴라
통제(Control):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자신의 일을 조정할 수 있는 자율성과 재량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책임만 크고 결정권은 없는지를 점검하라
보상(Reward): 임금뿐 아니라 인정, 존중, 피드백, 성장감이 있는가? 충분히 기여하고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환경은 빠르게 소진을 부른다.
공동체(Community): 번아웃은 고립 속에서 심해진다. 팀 내 갈등, 지지 부족, 상호 신뢰의 붕괴가 있는지 확인하라
공정성(Fairness): 배치, 평가, 승진, 의사결정 과정이 예측 가능하고 납득 가능한가. 불공정은 정서적 고갈뿐 아니라 냉소를 강화한다.
가치(Values): 개인이 중요하게 여기는 전문성, 윤리, 공공성, 돌봄의 가치가 실제 조직 운영과 충돌하는 경우 번아웃 위험은 커진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감각은 이 영역의 경고 신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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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해법이지만, 그래서 더욱 인상적인 해법을 살펴보겠습니다. 프라우덴베르거는 “Staff burn-out”에서 10가지 조언을 남겼는데, 그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현실적으로 헌신하는 사람과 비현실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을 구분하세요. 두 유형 모두 좋은 사람일 수 있지만, 각자의 동기를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왜 이곳에서 일하고 싶어 할까요? 또 에너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살펴보는 것도 좋습니다. 건강 상태와 일상생활에 대해 질문해 보세요. 에너지 수준이 낮다면 에너지 소모가 큰 업무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같은 직원이 특정 업무에 반복적으로 투입되는 것은 피하세요. 예를 들어 모금 활동은 매우 힘든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사람이 매번 모금 활동을 맡지 않도록 하고, 여러 사람이 담당하되 가능한 한 자주 업무를 순환시키세요.”
“한 사람의 근무 시간을 제한하십시오. 치료 공동체라면 9시간 교대 근무제를 도입하십시오. 응급 상황을 제외하고는 9시간을 초과해 근무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응급 상황이 지나치게 잦다면 실제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직원이 더 오래 일하기 위해 일부러 응급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지, 혹은 시설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십시오.”
“함께 일하는 집단이 ‘하나의 그룹’이라는 소속감을 느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는 구성원 누구도 다른 구성원들과 연락이 끊기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고립될 정도로 거리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시간이 지나며 그룹에서 너무 멀어지면, 탈진에 이르렀을 때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구성원들이 서로 가까울수록 서로를 더 잘 보살피고 돌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직원들도 서로의 경험을 나누도록 하세요. 번아웃을 경험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한때 번아웃을 겪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세요. 이런 과정은 번아웃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좋은 방법은 직원과 자신 모두가 충분한 신체 활동을 하도록 장려하는 것입니다. 달리기를 하고 싶다면 하세요. 테니스, 춤, 수영, 자전거 타기, 드럼 연주 등 신체적으로 피곤해질 만한 활동이라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소진으로 인한 피로는 감정적·정신적 피로인 경우가 많아 잠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인지적·신체적 활동에 집중하고 감정적인 부분은 잠시 내려두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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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 스트레스 개선은 소진을 겪고 있거나 혼자 버티고 있는 직원이 누구인지 세심히 살피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실제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어떻게 해결할지 함께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번아웃을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지지입니다. 조직의 사명이 개인을 압도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잠시 떠나야 한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결국 떠나게 되더라도, 스스로를 실패로 여기게 해서는 안 됩니다. 번아웃은 의지의 부족이 아니라, 회복의 한계를 넘어선 상태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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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WHO의 ICD-11에서는 번아웃을 질병이 아니라 ‘직업과 관련된 현상(occupational phenomenon)’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세 가지 차원(에너지 고갈, 직무에 대한 정신적 거리두기·냉소, 업무 효능감 저하)으로 정의한다. 이는 번아웃을 개인의 취약성만으로 설명하기보다 업무 환경과 조직 요인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해해야 함을 시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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