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또는 무더운 환경은 콩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ICOH의 역학 분과 학회인 EPICOH는 산업보건 역학 분야에서 활발하게 학술대회를 열고 있습니다. 2025년에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EPICOH 2025 학술대회가 열렸습니다. 일정이 추석 연휴와 겹쳐 한국인 참가자는 많지 않았습니다.
이번 학회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From evidence synthesis to action: the case of occupational heat stress and chronic kidney disease”라는 기조강연이었습니다. 발표를 맡은 연구자뿐 아니라, 니카라과에서 중미지역 신증후군으로 아버지를 잃고 본인도 사탕수수 농업에 종사하다가 신장병 예방 활동가가 된 사람이 직접 무대에 섰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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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미지역 신증후군(Mesoamerican nephropahthy)은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 등 중미의 더운 지역에서 주목된 만성콩팥병입니다. 주로 사탕수수밭 같은 고온의 옥외 작업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게서 많이 보고됐고, 당뇨병이나 고혈압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질환은 ‘비전통적 원인의 만성콩팥병’으로도 불립니다.
사실 중미지역 신증후군은 원인이 하나로 정리된 질환은 아닙니다. 조절되지 않는 만성질환, 소염진통제의 장기 복용, 농약 노출 등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다만 여러 역학 연구를 종합하면, 고온 환경에서의 고강도 노동, 불충분한 휴식과 그늘, 부족한 수분섭취가 결합된 반복적 열 스트레스와 탈수가 설득력 있는 설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학회 기간 동안 많은 연제가 발표됐습니다. 그중 최우수 구연발표상은 David Jonsson이 발표한 네팔 투석센터 단면연구 “From migrant labor to dialysis dependency: A cross-sectional study in dialysis centers in Nepal”에 돌아갔습니다. 이 연구는 네팔의 투석 환자 집단에서 이주노동 이력과 조기 투석 시작 사이의 관련성을 보여준 작업으로, 노동 이주와 신장질환을 하나의 장면으로 묶어 보여주었습니다.
카드뮴, 납 같은 중금속의 신장독성은 직업환경보건 분야에서 비교적 익숙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신장병을 둘러싼 직업의학적 관심은 기후, 열 스트레스, 이주노동이라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EPICOH 2025의 여러 장면을 돌아보면, 콩팥은 이번 학회의 중요한 키워드이자 가장 두드러진 주제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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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은 송금에 크게 기대는 나라입니다. 네팔 노동 이주 보고서 2022에 따르면, 약 3천만명의 네팔 인구에 대해 2008/09년 이후 해외취업을 위한 신규 노동허가가 470만 건 이상 발급됐고, 2011/12년 이후 갱신 노동허가도 180만 건을 넘었습니다. 주요 목적지는 걸프협력회의(GCC) 국가와 말레이시아입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대규모 건설사업이 이어졌던 카타르도 대표적인 목적지였습니다. 2021년 네팔 인구주택조사에서도 해외 거주자가 있는 가구가 전체 가구의 약 4분의 1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세계은행 송금 지표상 2024년 네팔의 송금액은 GDP의 4분의 1을 넘는 수준이며, 금액으로는 약 110억 달러 규모입니다.
이와 함께 네팔에서는 젊은 만성신장병 환자가 늘고 있으며, 이들 중 상당수가 해외 이주노동 이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사회문제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2026년 5월 네팔의 온라인 뉴스포털 Online Khabar는 “네팔의 이주노동자들이 악화된 신장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한편 영국 본머스대학 연구진 등이 참여한 네팔 다누샤 지역의 인구집단 기반 단면연구는 귀환 이주노동자 전체에서 만성신장질환 위험이 일관되게 높게 나타나지는 않았다고 보고했습니다. 다만 보안요원과 일부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하위집단에서는 높은 위험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연구진은 출국 전, 체류 중, 귀국 후를 이어서 보는 종단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중미지역 신증후군이 처음부터 명확한 직업병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닙니다. 그 경험에 비추어 보면 네팔 이주노동자의 만성신장질환도 아직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한 단계일 수 있습니다. 직업역학 분야에서 자주 그렇듯 인과성 논쟁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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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한국의 직업환경의학에서 신장질환은 상대적으로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카드뮴 신장병증이나 일부 유기용제 노출 사례를 제외하면, 신장질환은 폐질환, 소음성 난청, 근골격계질환, 정신건강, 직업성 암에 비해 자주 다뤄진 주제는 아니었습니다. EPICOH 2025에서 콩팥이 중요한 주제로 등장한 것과 대조됩니다.
우리가 매년 체감하듯 한국의 여름은 더 이상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계절이 아닙니다. 특히 기후변화로 고온 노출의 강도와 빈도는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혹서기 신장기능 변화는 인구집단 단위에서 관찰됩니다. 서울성모병원 환자 자료를 활용한 온도와 신장기능 연구에서는 1997년 이후 병원을 방문한 만성질환자들의 검사 결과를 분석했고, 더운 날씨에서 신장기능 지표인 사구체 여과율이 감소하는 양상이 보고됐습니다.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의 비율도 꾸준히 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 중 상당수는 농업, 어업, 조선업, 건설업에 종사합니다. 이들은 옥외 작업이나 고온 환경의 실내 작업에 반복적으로 노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걸프 국가와 비교하면 노출 강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열 스트레스, 수분 부족, 장시간 노동이라는 기전의 가능성까지 배제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한국인 옥외 노동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최근 정부는 해마다 폭염작업에 대한 규정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다만 폭염작업 예방대책은 주로 열사병 같은 급성 온열질환을 줄이는 데 초점을 둡니다. 그러나 중미지역 신증후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매년 여름 반복되는 열노출과 탈수가 무증상 급성신손상을 거쳐 장기적인 신장기능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점은, 이런 위험이 연구 통계에 충분히 잡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대규모 직업역학 연구는 대부분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활용합니다. 코호트 연구에서는 관심 사건의 발생과 추적 종료 시점을 명확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가 본국으로 돌아가면 국내 자료에서 추적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신장질환처럼 시간이 지난 뒤 드러나는 질환은 귀국 이후에 확인될 가능성이 있고, 수십 년의 잠복기를 가지는 직업성 암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재해자 개인은 보상과 관리의 대상에서 빠질 수 있고, 우리 사회는 실제 위험을 낮게 인식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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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소개한 EPICOH 2025의 기조강연이 끝났을 때, 회의장은 짧은 침묵 끝에 박수로 채워졌습니다. 몇몇 청중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탕수수밭에서 아버지를 잃고 본인 역시 같은 길을 걸어온 활동가의 이야기는, 콩팥이라는 장기가 어떻게 한 가족의 생계, 한 나라의 경제, 그리고 노동의 풍경과 연결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니카라과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네팔을 거쳐, 어딘가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한국과 무관하다고 단언할 근거는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은 많습니다. 적어도 우리나라에 콩팥을 두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없도록 감시하고, 기록하고, 예방하는 일은 직업환경보건 분야가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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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이레터 기사 <먹지 탈출 선언 - 산업보건 DX·AI 바우처가 필요하다>에 대해 구독자 의견을 전해드립니다.
녹색병원의 백도명입니다. 김수근 선생님의 제안은 산업보건 현장의 디지털 전환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 묻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소규모 산업보건전문기관이 자체 비용만으로 전산 시스템과 AI 도구를 도입하기 어렵다는 지적은 현장의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다만 실제 더 시급히 필요한 것은 일반의료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전산화와의 조율 혹은 호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수근 선생님이 현재 산업보건기관의 문제로 지적하신 수기 데이터 전환, 상담기록 전산화, 그리고 전산독성자료 연계와 같은 문제들은 일반의료를 포함한 전체 의료기관의 전산화와 맞닿아 있는 문제들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현재 일반의료기관은 보건복지부, 그리고 산업보건기관은 노동부가 관리하는 이중적 관리의 문제 때문에, 일반의료에서 진행되는 전산화와 궤적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인공지능 도입을 통한 보건의료사업의 전산화를 일반의료, 산업보건, 건강증진 등을 모두 아우리는 전체적 시각에서 이끄는 기능이 필요합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지점들은 일반의료와 산업보건에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내용들입니다. 자료와 개인정보보호 환자 관리, 수가 관리, 정책 관리 등에 필요한 자료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조율 자료공유와 표준화 자료처리자로서 인공지능의 검토와 관리에 대한 책임 전산화 산업 진흥과 규제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산업보건사업의 전산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일반의료와 어떻게 역할 분담 혹은 연계를 할지에 대한 고민들이 필요합니다.
a. 일반의료에서 보는 병의원 방문 환자의 직업 파악 등, 자료 표준화 및 교환의 문제
b. 일반의료와 산업보건사업의 환자 의뢰, 자료전송, 그리고 수가 구조와 청구의 문제
c. 산업보건사업에서 필요한 사업장 접근성과 산업보건의 역할의 문제
d. 산업보건사업 비용의 공공화와 건강보험 및 산재보험 재정 호환의 문제
e. 산업보건 서비스/컨설팅 기관과 산업보건의 및 보건관리대행기관의 연계 문제 좀 더 큰 틀에서 진행되는 논의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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