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효율의 함정
최근 발표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분야의 2025년 무작위 대조 시험(RCT)은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줍니다. 숙련된 프로그램 개발자들이 AI 도구를 사용했을 때, 작업 완료 시간이 오히려 19% 증가했습니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코드를 직접 작성할 때의 몰입이 깨지고, AI가 작성한 코드의 미묘한 오류를 찾아내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인지적 부하(Cognitive Load)가 발생한다고 설명합니다.
[논문] Measuring the Impact of Early-2025 AI on Experienced Open-Source Developer Productivity
또한 MIT 연구진은 최근 연구에서, AI 의존이 뇌의 활동 패턴을 바꾼다는 것을 신경과학적으로 증명했습니다. LLM(거대언어모델)을 사용하여 글을 쓴 참가자들의 뇌파(EEG)를 분석한 결과, 스스로 검색하거나 작성한 그룹에 비해 뇌의 연결성(Brain Connectivity)이 약하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는 비판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퇴화하는 '인지적 위축'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업무에 대한 몰입도를 떨어뜨려 인간이 충실한 ‘수행자’로 전락했다고 느낄 때 겪는 권태와 자존감 상실상태인 '보어 아웃(Bore-out)'으로 이어질 위험이 크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논문] Your Brain on ChatGPT: Accumulation of Cognitive Debt when Using an AI Assistant for Essay Writing Task
고립되는 사람들
미국심리학회(APA)와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에 소개된 연구들은 AI와의 상호작용 빈도가 높을수록 직원의 외로움, 불면증, 퇴근 후 음주 빈도가 증가한다는 상관관계를 보고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동료 대신 AI에게 먼저 질문을 하는 현실이, 직장 내 유대감을 형성할 기회를 차단하며, 사회적 지지(Social Support)라는 번아웃의 가장 강력한 완충재를 제거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논문] No Person Is an Island: Unpacking the Work and After-Work Consequences of Interacting With Artificial Intelligence
그럼에도 희망을 보며
우리는 어쩌면 노동에서의 해방이 아니라, 더욱 강도 높은 노동을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단순하고 지루한 업무를 AI에게 먼저 넘겨주었지만, 그 대가로 쉴 틈 없는 '판단'과 '책임'의 시간을 떠안았습니다. 과거에는 복사기를 돌리거나 반복적인 데이터를 정리하며 뇌가 잠시 쉴 수 있었던 '멍 때리는 시간'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그 빈틈은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AI 결과물 검증 작업과, 더 느려질지라도 정확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채워졌습니다.
결국, "AI가 번아웃을 막아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현재의 답은 슬프게도 "아니오, 오히려 가속화할 수 있습니다"에 가깝습니다. 기술적 진보가 인간의 적응 속도를 앞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동적 수행자가 아닌 능동적 기획자로 하지만 다행이도, 여러 연구 결과는 우리가 반드시 소진되어 ‘타버린 토스트’가 될 운명은 아니라는 희망적인 증거를 제시합니다. 앞서 언급한 Wang의 논문에서는 근로자가 주도적으로 AI를 활용하여 자신의 업무 범위나 방식을 주도(Task Crafting)하고, AI를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하는 경우 AI로 인한 불안이 줄어들고 긍정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하였습니다. 즉, AI라는 거대한 변화에서 근로자가 수동적으로 밀려나거나 불안해하지 않고, 능동적으로 AI를 활용해 업무영역을 확장 또는 조정해 나간다면 혁신적인 성과를 만들어내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윤리적 리더십'이라는 방파제 AI 도입과 직무 요구도의 관계를 파악한 Kim의 연구에서는, 윤리적인 리더십이 심리적 안전감을 지켜주는 완충효과를 가질 수 있다고도 제안합니다. 양방향적인 소통과 직장의 공정성과 투명성, 근로자에 대한 인간적인 존중 등은 근로자의 번아웃을 막는 주요한 요인입니다. 기업은 AI 도입 목적을 투명하게 공유하거나, 기술적 오류에 대해 언제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소통 채널을 마련하는 등 구체적인 윤리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합니다.
깨어있는 뇌는 연결성을 잃지 않는다
MIT 연구진 또한 AI를 활용하면서도 뇌를 끄지 말고 사용할 것 (Don't turn off your brain)을 권고합니다. AI가 생성한 것을 그대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AI의 초안을 수정, 재구성, 비판하며 사용한다면 인간의 뇌는 정보를 다시 처리하며 인지적인 활동을 유지합니다. AI의 답변이 사실인지, 다른 관점은 없는지, 정말 최적의 결과인지를 되묻는 과정을 거친다면 뇌는 기존의 건강한 연결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명마의 등 위에 그냥 얹혀가는 기수는 결국 말의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낙마하고 맙니다. AI를 단순한 '탈 것'에 그치지 않고 나와 한 몸처럼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방향을 결정하는 말 고삐를 쥐고 끈질기게 길들이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