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아진 노출량, 그렇다면 의료인은 안전할까?
병원 복도를 걷다 보면 'X-ray 촬영 중'이라는 경고등을 자주 보게 됩니다. 환자들은 잠깐의 검사를 위해 방사선에 노출되지만, 의료진들은 어떨까요? 매일같이 X-ray, CT, 형광투시 장비를 다루는 의료 종사자들의 건강은 과연 안전할까요?
전 세계적으로 약 740만 명의 의료 종사자가 업무 중 방사선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다행히 과거에 비해 노출량은 크게 줄었습니다. 하지만, 최신 연구들은 여전히 주목할 만한 건강 영향들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백내장 발생률 증가
방사선 노출 시 간과하기 쉬운 인체 부위가 있습니다. 바로 눈의 수정체입니다. 과거에는 높은 선량에서만 백내장이 발생한다고 여겼으나, 최근 연구들은 매우 낮은 선량(50-100mGy)에서도 백내장 위험이 증가함을 보여줍니다. 특히 심장 중재술을 시행하는 의료진에서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수정체 혼탁과 전리 방사선 노출 사이에 선량-반응 관계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전리 방사선은 어떻게 수정체에 영향을 주게 될까요? 2012년에 발간된 ICRP 보고서 118에서는 새로운 흡수선량 역치값을 0.5Gy로, 방사선작업자의 수정체 흡수 선량을 연간 150mSv에서 5년 평균 20mSv로 줄일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것은 과거 전리 방사선노출에 의한 백내장 유발이 결정적 영향이 아니라, 확률적 영향일 가능성이 있으며, 낮은 선량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 때문입니다.
전리 방사선에 의한 백내장 발생의 기전
가능한 메커니즘으로는 수정체의 전구 상피세포가 섬유세포로 분화하는 과정에서 많은 단백질이 관여하고 조절되는데, 20mGy 및 100mGy의 낮은 선량에서도 DNA 이중 가닥의 파손이 발생할 수 있다는 동물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백내장은 수정체 단백질의 변성에 의해서도 생길 수 있습니다. 수정체는 섬유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세포의 산화 스트레스에 의한 단백질 변성이 백내장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전리 방사선에 의해 발생하는 백내장은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백내장"과는 다릅니다. 방사선으로 인한 백내장은 주로 수정체의 뒤쪽 부분(후낭하 백내장)에 발생하며, 일반적인 핵성 백내장(Nuclear Cataract), 피질 백내장(Cortical Cataract)과 달리 더 빠르게 진행됩니다.
[논문] 전리방사선에 노출되는 의료인의 백내장 위험: 체계적 고찰, 2020
[논문] 직업적으로 방사선에 노출된 의사와 의료 종사자의 눈 수정체 불투명도 및 백내장: 체계적 고찰 및 메타 분석. 2022
혈액암 발생률 증가
대규모 국제 연구에서는 의료 방사선 종사자들의 특정 혈액암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일반인보다 최대 9배 높은 위험을 보였습니다. 골수이형성증후군은 남성 의료 종사자에서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발성 골수종 역시 유의미한 증가가 관찰됩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들은 주로 INWORKS 핵산업 종사자 코호트 연구에서 도출되었습니다.
[논문] 원자력발전소 노동자에서 전리방사선에 대한 저용량 노출 후 백혈병, 림프종, 다발성골수종의 사망률. 2024.
암에 의한 사망률 증가
체계적 문헌 고찰에 따르면, 의료 방사선 종사자들의 암 사망률이 증가하는 경향이 확인되었습니다. 1975년부터 2020년 3월까지 발표된 연구들을 분석한 결과, 전체 암, 유방암, 갑상선암에 의한 사망률이 모두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연구는 방사선사, 영상의학과 의사, 중재 심장 전문의 등을 포함한 코호트 연구들을 대상으로 했으며, 치과 분야 종사자, 환자 대조군 연구, 기술 통계만 제시하는 연구는 제외했습니다.
특히 암 발생 위험은 1950년 이전에 방사선 작업에 종사했거나, 중재시술을 담당하거나, 방사성 핵종을 이용한 시술을 수행한 의료인들에게서 높게 나타났습니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연구에서는 45세 이상 방사선 기술자들의 백혈병 발생 위험이 높았고, 중국의 방사선 작업자들에게서는 백혈병 발생률이 2.17배 증가했습니다. 유방암은 중재 시술 기술자들에게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위험 증가가 관찰되었으며, 갑상선암은 1950년대 이전 노출자와 5년 이상 노출된 기술자들에게서 3배 이상의 위험 증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과거의 느슨했던 방사선 방호 기준으로 인해 현재보다 높은 방사선 노출이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논문] 방사선노출 의료인의 저선량 전리방사선 노출과 암위험. 2020.
[논문] 프랑스, 영국, 미국의 저용량 전리방사선 노출과 암 사망률. 2023
납 가운의(방사선 차폐복) 아이러니
방사선을 차단하기 위해 착용하는 납 앞치마는 무게가 5-7kg에 달합니다. 하루 종일 이를 착용하고 서서 일하는 의료진들은 심각한 허리와 목 통증을 호소합니다. 실제로 '중재시술 디스크 질환'이라는 용어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최근 발표된 대규모 메타분석 연구는 전 세계 31개 연구, 8280명의 의료 종사자를 대상으로 납 가운 착용과 근골격계 질환 발생의 연관성을 분석했습니다. 납 가운을 착용하는 의료진의 근골격계 질환 발생위험이 납 가운을 착용하지 않는 의료진 (대조군)에 비해 3.83배가 높았습니다. 납 가운은 6.8kg 에 달하는데, 척추 디스크에 2000kPa 을 초과하는 압력을 가해 장시간 착용 시 심각한 척추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논문] 근골격계 질환과 의료 종사자의 납 앞치마 사용 간의 연관성: 체계적 고찰 및 메타 분석. 2025
특히,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은 지역별로 편차가 심했습니다. 아시아 지역의 의료진의 경우 근골격계 질환 발생의 위험이 5.3배로 가장 높았고, 유럽이 4.65배, 북미가 2.23배 였습니다. 납 무게는 동일하지만, 체형 차이로 인해 이러한 편차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체계적문헌고찰에 소개된 연구에 따르면 연구에 참여한 의료진의 52.8%가 실제 근골격계 통증을 경험했으며, 이 중 45%가 납 가운을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납 가운 착용은 자세 불균형, 근육 피로감, 관절 스트레스 증가 등 부정적인 인체공학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 의료진의 업무 능력 저하와 더 나아가 경력 단절까지 유발할 수 있습니다.
방사선으로부터 의료진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의료진은 귀찮더라도 반드시 개인 선량계와 보호장비를 착용해야 합니다. 특히 안구 보호는 필수적입니다. 물론 앞서 밝힌 바와 같이 납 가운은 무겁고 근골격계에 무리가 될 수 있지만, 다른 보호장비가 없다면 반드시 착용해야 합니다. 또한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재 방사선종사자 건강검진은 조혈기계 혈액 검사 외에는 문진으로만 이루어져 실제 건강 영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안과 검진을 정기적으로 받는 것을 권장합니다.
의료진 개인의 보호만으로는 방사선 노출을 줄이기 어렵습니다. 노출 감소를 위해서는 공학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차폐 보호 장비는 정기적으로 교체하고, 가능하다면 경량화된 첨단 장비를 도입해야 합니다. 인체공학적인 납 가운(방사선 차폐복)에 투자하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방사선은 의료 진단과 치료에 필수적인 도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위험인 만큼, 그 영향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철저한 관리가 중요합니다. 개인 안전을 위한 방사선 방호 3원칙(시간 최소화, 거리 최대화, 차폐)을 생활화하고, 특히 직업적으로 방사선에 노출되는 분들은 법적 기준을 준수하며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통해 자신의 건강을 보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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