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반복되는 야외작업자 온열질환 우려
매년 폭염기가 되면, 야외작업자에 대한 온열질환에 대한 우려, 그리고 제도개선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반복됩니다. 그 만큼 우리는 발전하고 있을까요?
먼저 문제의 규모를 살펴봅니다. 근로복지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3년까지 6년간 온열질환 산재 승인 건수는 총 147건(사망 22건)이었습니다. 기록적인 폭염을 보였던 2018년 35건으로 가장 많았으며, 2023년 31건이었습니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47.6%(70건), 제조업 15.0%(22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12.2%(18건), 음식·숙박업등 기타 사업장 6.8%(10건) 순이었습니다. 사망자수는 건설업이 15건(68.2%)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폭염 속 노동'에 6년간 온열질환 산재 147건·사망사고 22건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 실외발생이 79.6%
산재요양 승인 자료는 후향적인 지표입니다. 그래서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기반한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신고현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11년 온열질환자수는 443명이었습니다. 그런데, 2018년에는 4,526명으로 10배 가량 많았습니다. 폭염일수가 증가할수록 온열질환자가 증가하였습니다. 온열질환의 79.6%가 실외에서 발생하였습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질수록 이 숫자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따라서, 폭염 속 야외작업자의 건강 문제는 앞으로 산업보건의 중요한 주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폭염일수와 온열질환자수의 정비례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요?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운영 결과 발표
2023년 온열질환감시체계 운영결과
실내작업자들도 폭염기 온열질환 위험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3편, 제6장 온도ㆍ습도에 의한 건강장해의 예방, 제599조 ‘고열작업’에는 폭염기 작업에 대한 규정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에 ‘폭염에 직접 노출되는 옥외장소에서 작업하는 경우’ 에 대한 규정이 추가되었습니다.
그런데 폭염기에 ‘고열작업이 아닌’ 실내작업자는 문제가 없었을까요? 일부 물류센터에서 폭염에 노출되는 노동자들이 온열질환으로 실려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온 뒤 2022년에 ‘옥외장소’를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로 변경하였습니다. 실제 2023년에는 대형마트 카트노동자가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한겨레] 쿠팡물류센터는 ‘철판 열돔’…“열사병으로 쓰러질 판”. 2021.7
[고용노동부 보도자료] 폭염기 실내작업장 근로자 건강권 보호를 위한 휴식 의무화 시행. 2022.8
고용노동부의 온열질환 예방 가이드라인
고용노동부에서는 체감온도에 따라 33도 이상이면 10분, 35도 이상이면 15분간 그늘에서 휴식을 제공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33도 이상이면 무더위 시간대(14시부터 17시)의 옥외작업을 단축하거나, 작업시간을 조정하도록 하고, 35도 이상이면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옥외작업 중지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조치를 자기규율에 따라 시행하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사업주가 폭염기 건강장해 예방을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사업주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또한 열사병은 중대재해처법법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사망자가 발생할 경우 그 처벌도 무겁습니다. 그래서 과거보다 온열질환에 대한 사업장의 경각심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 정책자료실] 2024년 온열질환 예방가이드
체감온도, 기상청 자료와 현장 측정자료가 달라
건설노조에서 2023년 7월-8월에 31개 건설현장에서 실측한 온도와 습도에 기반한 체감온도와 기상청에서 해당 지역에 제공한 체감온도를 비교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 차이가 10도 이상 높은 현장이 15.3%(총 222곳 중 34곳)였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가열된 지표면, 철골,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부터 발생하는 복사열의 영향으로 판단됩니다.
고용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의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는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를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한다면 어떤 방법이 가능할까요? 현장에서 WBGT(습구흑구온도지수)를 측정하고, 현장의 구체적인 위험요소를 고려하여 위험성평가를 한 후 예방조치를 취하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WBGT 측정장비는 20만원, 간단한 온습도계는 1-2만원이면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합니다.
고용노동부의 가이드라인은 낮은 준수율을 보여
2024년 건설노조에서 1,575명의 건설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하였습니다. 체감온도가 35도 이상일 경우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옥외 작업을 중단하도록 하고 있는 고용노동부의 권고 사항이 지켜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18.3%만이 그렇다고 응답했습니다.
2023년 고용노동부가 전화와 현지 확인을 통해서 확인하여 국회의원실에 제출한 ‘건설현장 자율적 작업중지 등 조치 현황’에서는 36%가 작업 중지를 하고 있다고 답하였습니다. 노동조합의 자체조사와 고용노동부의 조사를 종합해보면, 현장에서 폭염기 대책의 집행률은 만족스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기규율’이 작동하기 어려운 조건
중요한 제한점이 있습니다. 폭염으로 인해 업무가 중단되면, 건설현장이나 물류현장에서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작업중단에 의한 손실은 자기규율에 기반한 예방에 거대한 저항으로 존재합니다. 특히 배달플랫폼 노동자의 경우는 폭염에 의한 배달작업의 중지는 바로 수입의 중지로 이어지므로, 노동자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폭염기 건설노동자 사망재해 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국회토론회
[매일노동뉴스] 산업안전보건법령엔 ‘그늘진 장소 제공’유일. 2024.6
[경향신문] 끓는 아스팔트 달리는 배달노동자들 "우리에게 폭염대책은 해열제뿐”. 2023.8
작업중지권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작업중지권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건설노조의 조사에 따르면, 폭염 상황에서 작업중단을 요청한 경우는 11%였습니다. 그 중 작업중지가 수용된 경우는 41.8%였습니다. 사고위험이 높은 작업에 비하면 폭염에 대한 작업중지권 행사는 아직까지는 건설현장에서 적용되는데 제한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폭염 시기 작업중지를 의무화한다면
국회입법조사처에서는 최근 폭염·한파에 대한 작업중지 의무화 시 근로자 보호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경총은 폭염특보와 같은 재난경보를 기준으로 획일적인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면, 산업현장에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보고서에서는 작업중지가 필요한 조건을 일률적으로 정하기보다 산업별·지역별 혹은 실내·외작업별로 세분하고, 경보 발령에 사용되는 기온 조건 이외에 열사량, 습도 등을 포함한 객관적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안하였습니다.
KBS. 2024.7.8 고용부 “폭염·한파 작업중지권 의무화, 신중하게 검토해야”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004781
라이더유니온이 제안한 기후실업급여
라이더 유니온에서 흥미로운 제안을 한 적이 있습니다. 기상청 데이터와 플랫폼을 연동해 특정한 상황에선 주문접수를 중단하고 자동적으로 작업 중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고용보험을 통한 ‘기후실업급여’로 완충하자는 주장을 한 바가 있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기후 위기라는 상황에서 배달 노동자들의 안전보건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개별 제도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넘어서야 함을 보여줍니다. 만약 이 제도를 실현하려면 산업안전보건제도와 고용보험제도의 개선을 함께 논의해야 합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고용노동부가 부처 간 장벽을 넘고, 지자체를 포함하여 다양한 인적 물적 관리 자원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참여를 활용해야
폭염기 온열질환처럼 언제 어떠한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문제는 노동자의 참여가 가장 기본이 됩니다. 현장에서 온습도나 WBGT 측정하여 알권리를 확보하면 더 많은 위험을 인지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 단계로서 ‘작업중지권’은 위기 직전의 노동자들을 구하게 될 것입니다. 위험성평가에서 노동자의 참여는 폭염기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실효성있는 방안을 찾도록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을 자기규율(self regulation)의 당사자(self)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은 유감입니다.
자기규율 관리체계는 외적 규제가 뒷받침되어야
‘위험성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관리체계 확립’을 통해서 중대재해를 예방하려면, 현장에서 자기규율이 작동하기 어려운 이유를 파악해야 합니다. 현장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자기규율이 작동할 수 있는 외적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먼저, 다양한 분야와 업종의 상황을 반영하여 실제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사업주, 노동자, 근로감독관, 중간지원조직이 수행하는 예방활동의 준거가 되고, 실제 행정조치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어야 현살에도 작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현행법에서 이미 주어져 있는 시정조치나 작업중지명령과 같은 행정적 권한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필요도 있습니다. 폭염기 작업중지 의무화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나오는 이유는 실제 현장에서는 폭염에 대한 예방대책에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가 행정적 권한을 소극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쓴이: 류현철 (재단법인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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