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산업보건과 환경보건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대부분의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선생님들께서는 수련기간동안 산업보건을 중심으로 공부하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의 임상 실무(특수건강검진, 보건관리대행)가 산업보건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기 때문에, 산업보건에 더 익숙하리라 생각합니다. 환경보건은 수련 커리큘럼에서 아주 적게 다루고 있고, 과 이름에 ‘환경’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이건 뭔가,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우선 좀 가벼운 이야기부터 해볼까 합니다. 다들 대략 인지는 하고 계시겠지만 사실 환경보건과 산업보건이 다루는 유해인자는 같습니다. 다만 산업보건이 소수의 노동자가, 고농도의 유해인자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노동자도 일이 아니면 노출되지 않고 피했을 겁니다.) 상황을 다룬다면, 환경보건은 대다수 시민이, 상대적으로 저농도의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상황을 다룬다는 점이 차이점일 것 같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면 라돈을 들 수 있습니다. 초창기 라돈의 건강영향에 대한 연구는 우라늄 광산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에게서 높은 폐암 발생률이 보고 되면서 연구가 시작되었고, 라돈에 관한 연구를 살펴 보면 1950년대, 60년대 논문들 중에 광산 노동자들에서 라돈 노출 선량과 폐암이나 각종 다른 암과의 관계를 연구한 논문이 많습니다. 이러던 연구 트렌드가 이제는 저선량의 일반 거주지 노출과 백혈병 등 암과의 관계를 연구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저 또한 주거지 저농도 라돈 노출이 백혈병의 발생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는지 용량-반응 메타분석을 수행한 적이 있습니다.
[보고서] EPA Assessment of Risks from Radon in Homes
하나 예를 더 들어보면, 과불화합물의 건강영향에 대해서도 들 수 있습니다. 사실 과불화합물의 건강영향에 대한 연구는 지난 번 서경대학교 조용민 교수님께서 다루신 듀폰 (Du Pont) 사 케미컬 공장의 과불화합물 노출 건강영향 연구가 유명합니다 (C8 science panel study). 하지만 그와 동시다발적으로 과불화합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질병 발생에 대한 연구들이 이미 출판되고 있었습니다. 즉, 일반 시민에서 상대적인 저농도 노출의 건강영향에 대해서 연구하기 어려운 경우, 산업보건에서의 상대적 고농도, 소수 노동자에서의 노출 연구가 시사점을 제공해주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매년 국제환경역학회 (International Society for Environmental Epidemiology, ISEE) 연례 컨퍼런스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환경역학을 다루는 ISEE에서도 꼭 직업보건 (occupational health) 세션이 매일 작은 회의장 1개 정도가 할당이 됩니다. 왜 이렇게 직업보건 세션을 꼭 하루에 1개씩이라도 할당을 해주는 것일까요? 그건 애초에 이 두 분야의 연구자들이 겹치고, 영역이 겹치고, 미국에서도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Medicine으로 전문 수련 과목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2023년 회의에서 한 chair의 말을 인용하면, "직업보건 연구가 환경보건에서 어려운 주제에 대해 돌파구를 마련해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Occupational health studies sometimes make a breakthrough in complex topics in environmental health’) "고 합니다.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는 논문 하나를 언급 드리겠습니다. 아마 모든 전문의 선생님들이 전문의 시험 준비하실 때 족보 문제 중 하나로 포함되어 있던 논문으로서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바로 Winer 등이 쓴 ‘Third wave of asbestos-related disease from secondary use of asbestos: A case report from industry’입니다. 이 논문은 석면 관련 질환이 1차 물결에서는 원시 석면 암석을 채굴하는 노동자들에게서 주로 발생했으며, 2차 물결에서는 석면을 함유한 제품을 제조하는 노동자에게서 발생했고, 3차 물결에서는 이미 직장, 가정 등 환경에 석면이 산재해 있기 때문에 일반 시민에게서 석면관련질환이 발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논문이 산업보건과 환경보건의 관계에 대해 굉장히 중요한 지점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하나의 연속선상에서 유해인자 노출의 흐름이 노동자에게서 일반시민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산업보건과 환경보건은 동일한 유해인자를 다루고 있습니다. 차이는 일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유해인자에 고농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소수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건강영향을 연구하는가, 혹은 일상적으로 저농도에 노출되는 다수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두 분야의 연구는 상호 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지금은 환경의학이 직업의학의 특수건강검진이나 보건관리대행처럼 정해진 임상실무가 없습니다. 다만, 환경유해인자에 노출되었던 대상자들에게 사후적으로 노출정도와 연관성을 심의하여 보상을 지급하는 한시적 제도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보상이나 각종 환경 피해 지자체에 대한 피해구제심의제도입니다. 만약 이런 제도들이 사전적으로 더 발전할 수 있다면 환경유해인자 노출이 예상되는 환경오염 유발시설 주변 거주 주민들에 대한 환경의학 특수검진이 시행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는 인근 부동산 가격 및 지자체의 반발 등 넘어야 할 여러 산이 있어 쉽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글쓴이: 문진영 (인하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