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힘이다."
잉글랜드의 철학자이자 귀납법을 주장한 프랜시스 베이컨은 ‘knowledge is power’를 이야기했고 현시대 많은 사람들이 동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모르는게 약이다’가 통하는 곳도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안전보건에서는 예외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모르는 것을 물을 수 없습니다. 조금 아는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몹시 부끄러워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을 묻지 않습니다. 오직 아는 사람만이 모르는 것을 즐겨 물을 수 있습니다.
특히 사업장에서 산업보건관리를 담당하는 보건관리자라면, 전문 분야에 대하여 계속 알아보고, 묻고, 현장을 경험하면서 근로자 보건관리를 이끌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겠죠.
[네이버 지식백과] 모르는 게 있다면 길 가는 사람에게라도 물어야 한다
보건관리자 제도의 시작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되면서 제 6장에 유해물 취급, 안전위생교육, 질병자의 취업금지, 건강진단 조항이 만들어졌고, 일정 사업장에 안전,보건관리자를 두도록 하였습니다. 1961년 근로보건관리규칙이 공포되어 보건관리자의 자격을 ‘의사’로 명시하였고, 50인 이상 근로자를 가진 사업장에 보건관리자를 임명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보건관리자 아래에 보건관계 기술사 또는 소정의 교육을 받은 의료업자인 ‘보건관리요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보건관리자에 대한 제도는 있었으나, 사업장 내 보건관리활동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후 우리나라는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보건관리자 제도가 구축되어 시행됩니다. 1997년에 보건관리자를 선임해야 하는 사업장의 규모와 선임해야 하는 보건관리자 수가 정해졌는데, 지금까지 변화없이 유지되어 왔습니다. 현재는 사업장의 보건관리자가 되려면, 법적으로 보건관리자 선임 자격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필수적인 보건관리자 직무교육을 신규와 보수로 나뉘어 정기적으로 이수하여야 합니다.
[논문] 보건관리자 제도의 발전과 전망, 이복임
보건관리자 직무교육의 역사
지금의 보건관리자 직무교육 제도는 1962년에 보건사회부에서 주관하여 가톨릭대 산업의학연구소의 故조규상 교수님등이 사업장에 출강하면서 기초를 마련하였습니다. 1964년에는 대한산업보건협회 부속 훈련원이 최초로 보건관리자교육 1기 수료생을 배출하였습니다. 1967년에는 직무교육이 보건사회부에서 노동부로 이관되었고, 대한산업보건협회가 직무교육기관으로 지정받아 본격적인 교육훈련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그 이후 60여년을 지나왔습니다. 당시 시작된 교육 훈련의 내용은 ‘보건행정, 보건통계, 역학, 환경위생, 전염병관리, 질병관리, 보건교육, 건강관리, 노동법규, 사회학, 산업생리학, 재해상해관리, 직업병, 작업환경측정법, 적성검사’ 였습니다. 지금의 필수과목과 비슷합니다. 다만, 사회학이나 산업생리학, 적성검사 같은 과목은 다루지 않고 있는 것이 다릅니다.
[기사] 산업보건 50년 현장의 기록 - 보건관리자 직무교육의 개척기
보건관리자 직무교육의 현위치
현재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제21조에 따라 보건관리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의사, 간호사, 산업보건지도사, 산업위생관리산업기사 또는 대기환경산업기사 이상의 자격자, 인간공학기사 이상의 자격자, 전문대학 이상에서 산업보건 또는 산업위생학과 졸업자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보건관리리자 직무교육의 커리큘럼은 자격의 구분 및 보유 지식과 상관없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제22조 ‘보건관리자의 직무’에 맞추어 교육기관이 구성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우 획일적이고, 지식 수준의 정도와 상관없이 교육이 이루어지고, 강사의 능력에 따라 교육 내용이 좌우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또한 직무교육기관들은 교육수수료를 활용하여 과정개발, 강사섭외, 교안작성, 회계정산, 기관평가까지 스스로 다해야 합니다. 고용노동부의 제도 개선 정책 반영에도 우선 순위가 밀리는 분야여서 지난 20여년간 직무교육에 큰 발전이 보이지 않습니다.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당면한 문제
첫째, 현실과 동떨어진 직무교육 수수료
2009년도에 산업안전보건업무 수수료가 개정, 고시되면서 보건관리자 신규교육 수수료는 1시간당 5,400원(34시간 186,000원)으로 정해집니다(고용노동부 고시 제2021-7호). 그 이후, 2023년 현재까지도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구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2009년 당시의 생활물가를 찾아보면, 김밥천국 원조김밥이 1,000원, 떡라면이 2,500원이었는데, 2023년 현재는 각각 3,000원, 4,500원으로 인상되었습니다. 직무교육기관이 40명 수강생 기준 5일짜리 34시간 과정을 구성하려면, 과정개발비, 교재비, 교육운영비, 기타 기관수익까지 고려해볼 때 오직 고시 수수료로만 직무교육의 수준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차라리 안전보건교육처럼 고시를 없애거나, 수수료를 현실에 맞게 개정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둘째, 우수한 직무교육 강사 수급의 어려움
보건관리자 직무교육은 산업보건 전반에 걸치 지식과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로 하여금 교육이 이루어질 때 만족도 및 효과가 큽니다. 그러나, 낮은 교육수수료로 인해 적정한 강사비를 지급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또한 2015년부터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강사료 신고를 해야 하는 근로감독관, 안전보건공단 전문가, 대학교수 등이 직무교육기관 출강을 사실상 축소하거나 꺼려하면서 외부 강사풀이 축소되어 왔습니다. 또한 우수 강사진들도 강사비가 낮은 직무교육기관보다는 기업체 교육을 선호하는 현상도 나타납니다.
셋째, 보건관리자 선임 통계 관리의 허술함
직무교육이 제대로 계획되고 이행되려면 우선 수요가 정확하게 파악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에서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등 직무교육 대상자들에 대한 선임 및 선임해제 현황을 집계하고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문서로 선임, 해제가 이루어지다보니 행정적인 소요시간이 많이 들어가고, 그 선임 결과가 자동으로 직무교육 대상으로 연동되지 않고 있습니다. 업종별, 지역별, 규모별, 보유자격별 등 직무교육 대상자 통계가 명확해질 때 교육 프로그램 개발, 교육 수강 기간의 예측, 월별 교육인원 추정 등 다양한 직무교육 정책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넷째, 관리감독자와 소통을 위한 보건관리자의 소통능력 부족
보건관리자의 중요한 직무 중 하나가 관리감독자에 대한 지도와 조언입니다. 따라서 보건관리자가 관리감독자들과 의사 소통을 잘 할수록 안전보건경영에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반면 보건관리자로써의 직무를 이해하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된다면, 관리감독자에게 신뢰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따라서, 특히 보건관리자의 신규 교육은 전문적 이론교육과 현장 적용 실습교육이 잘 접목되어 진행되어야 하며, 관리감독자에 대한 지도와 조언에 관한 커뮤니케이션 스킬도 필수 항목으로 추가되어야 합니다. 근로자, 관리감독자와 소통을 못하는 산업보건전문가는 사업장에서는 앙꼬없는 찐빵으로 전락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논문] 제조업의 산업안전보건 관련 의사소통이 안전보건경영 수준에 미치는 영향
다섯째,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직무교육
2021년 중대재해 처벌법이 시행되면서 급성 직업성 중독에 대한 중요성도 커지고 있고,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감염병 관리에 대한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습니다. Chat-GPT, A.I의 시대에 돌입하면서 산업안전보건 빅데이터 관리도 필요하고, 스마트 안전보건관리에 대한 이해력도 요구됩니다. 특히 건설업 보건관리자는 제조업의 업무와 달라 건설현장에 대한 이해와 적응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서비스업, 공기업 및 지방자치단체 등도 보건관리 전담조직이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업종별로 보건관리자마다 차별화된 역할이 요구되므로 수요자 중심의 전문교육 개발이 시급합니다.
[논문] 수요자 중심의 산업안전보건교육 과정개발을 위한 요구분석
회사를 사랑하는 보건관리자
어린이에게 길을 건널 때 손을 들고 건너게 하는 유치원 교사의 실천적 가르침은 어린이의 수용력도 높고 추후에 오랜 기억 속에 남습니다. 이렇듯 직무교육은 그 사람의 역량을 최대한 끄집어낼 수 있는 기억의 맨 아래에 하나하나 자리잡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안전보건관리책임자든 안전관리자든 보건관리자든 간에 본인의 직무와 역할에 대하여 많이 알고 전문성이 쌓일수록 수용력이 높아지고, 근로자 안전보건관리에 보다 쉽게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드라마 ‘미생’에서 어려운 요르단 사업을 재추진하게 되는 제안을 하는 이유를 묻는 회장의 질문에 주인공 ‘장그래’는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미생 13회]
보건관리자에게 자신감을
사업장 보건관리자가 자신의 역량에 대하여 자신이 없으면 근로자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회피할 수 밖에 없으므로, 우리 회사를 믿고 사랑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이 있겠지요? 그 어려움을 극복하는데에 ‘보건관리자 직무교육’이 그 책임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공단, 직무교육기관들이 좀 더 관심을 갖기를 기대합니다.
글쓴이 : 황정호 (한양대학교병원 서울직업병안심센터 사무국장)
한양대학교 보건대학원 겸임교수
(사)한국산업보건학회 학술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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