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을 맞이 하여 거짓말에 관한 특별한 에세이를 준비했습니다.
“우유 있는데 카페라떼 해줄까? 오빠 카페라떼 세계 2위다.”
영화 비스티보이즈에서 하정우가 연기한 남자 주인공의 대사입니다.
거짓말이지만 악의가 없고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에 밉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거짓말을 익살맞다 하고 때로는 호감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거짓말이 이렇게 가볍지는 않습니다.
특히 직업적으로 웃음을 강요받는 감정노동자에게 미소는 단순한 사회적 예의가 아니라 노동입니다.
서비스 직종에서 감정 억압이 장기화될 경우 우울증, 번아웃, 심지어 자살 위험까지 증가한다는 연구들이 반복적으로 보고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일상에서 크고 작은 연기를 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연기의 상당수는 사실 작은 거짓말입니다.
|
|
|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거짓말에 대해 이중 기준을 가지고 있습니다.
타인의 거짓말에는 엄격하지만, 자신의 거짓말에는 관대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정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행동은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사회심리학자 Bella DePaulo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하루에 1~2회 정도 거짓말을 한다고 합니다.
대부분은 사소하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거짓말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는 정직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믿으면서도 일상에서는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한 거짓말을 기대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말을 통해 관계를 부드럽게 유지합니다. 사회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윤활제(social lubricant)라고 부릅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것은 의례적인 인사와 답변입니다. 정확한 상태 보고라기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런 대화 덕분에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지키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이며 관계의 표면적 평온을 유지합니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납니다. 진실 편향(truth bias)입니다. 사람들은 친밀한 대상일수록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친밀한 관계일수록 거짓말이 더 잘 통하기도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편향은 관계 유지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완전히 냉정하게 서로를 의심하는 관계는 오히려 오래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
|
|
한 취업포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94.8%가 “악의 없는 거짓말이 직장생활과 인간관계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습니다.
직장인은 출근과 동시에 여러 의례적 표현을 사용합니다.
조직에서 살아가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몇 가지 기술을 배웁니다.
좋은 평가는 널리 알리고 나쁜 평가는 조용히 넘기는 전략
조직행동 연구에서는 이를 creative truth-telling, 즉 “창의적인 진실 말하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지만 선택적으로 진실을 말하는 방식입니다.
거짓말을 정체성 관리의 한 방식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여러 층위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적 정체성, 관계적 정체성, 집단적 정체성입니다.
이런 믿음이 흔들릴 때 사람들은 사실을 조금 완화하거나 불편한 정보를 뒤로 미루기도 합니다. 동료를 보호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습니다. 조직의 체면을 지키려는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거짓말은 단순히 이기적 행동이라기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직장에서 완전히 솔직한 사람은 종종 “사회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반대로 너무 능숙한 사람은 “정치적이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직장은 어쩌면 진실과 거짓 사이 어딘가에서 운영되는 공간일지도 모릅니다.
|
|
|
문제는 거짓말이 누적된다는 것입니다. 한 번의 거짓말은 다음 거짓말을 필요로 합니다. 행동경제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작은 부정행위를 반복할수록 점점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거짓말은 심리적 비용을 남깁니다.
특히 조직에서는 정보의 정확성과 시의성이 손상됩니다. 의사결정은 현실이 아니라 보고된 현실에 기반해 이루어집니다. 이때 조직은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는 거짓말의 비용이 훨씬 큽니다. 안전보고서 조작, 위험요인 은폐, 허위 안전교육 이수 등의 거짓말은 결국 화재, 폭발, 추락, 끼임 사고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
|
|
예를 들어 한 지하철 차량기지에서는 전동차가 선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회사 측은 처음에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내부자의 고발로 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실제 탈선 사고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
|
|
또 다른 조선소 추락 사고에서는 처음에는 “근로자의 실수”로 설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안전난간이 파손된 상태였습니다. 안전보건 분야에서는 거짓말이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사고 이후에 밝혀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조직 자체가 거짓말을 유도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경영학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지적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완벽주의 조직일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정직한 보고가 줄어듭니다.
|
|
|
또 다른 형태의 거짓말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산재 부정수급입니다.
예를 들어 척수손상으로 하반신 완전 마비 판정을 받고 산재 보험금을 타온 근로자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는 모습이 포착된 사례가 있습니다.
한 병원 근로자는 집에서 넘어져 다친것을 병원 관계자에게 사무실에서 넘어져 다친 것으로 산재처리를 부탁하여 부정수급을 받아 적발되었습니다.
배달 중 넘어져 요양급여를 수령받은 배달원은 조사 결과 업무와 관계 없이 음주 운전을 하다 발생한 사고로 다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례는 결국 성실히 일하다 산재를 당해 도움이 필요한 근로자에게 돌아가야 할 자원을 줄입니다. 제도에 대한 신뢰도 떨어뜨립니다.
이런 문제를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만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많은 경우 거짓말은 조직 환경이 만들어내는 행동이기도 합니다.
|
|
|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리더의 태도입니다.
많은 관리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아첨을 원합니다. 관리자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나는 솔직한 말을 듣고 싶은가?” 아니면 “듣기 좋은 말을 듣고 싶은가?”
직원이 진실을 말하려면 허가와 심리적 안전감이 필요합니다.
|
|
|
만우절의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대체로 봄의 시작과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축제에서 유래했다는 설명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잠시 바보가 되어 일상의 긴장을 풀고 삶의 무게를 내려놓는 날입니다.
그래서 만우절의 거짓말은 대개 누군가를 웃게 만드는 거짓말입니다.
직장에서 우리는 많은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중 일부는 완전한 진실이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안전과 생명이 걸린 영역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작은 거짓말 하나가 큰 사고의 전조일 수 있습니다.
산업안전보건의 세계에서 진실은 때로 불편합니다.
거짓말이 없는 사회는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적절한 수준의 관계 지향적 기만은 때로는 관계를 보호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를 웃게 만드는 가벼운 거짓말 하나쯤 시도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다만 이 글의 독자가 산업보건을 책임지는 분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거짓말의 이중성은 한 번쯤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