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김홍도의 〈타작; 打作 〉은 단원풍속도첩에 수록된 작품 중 하나로, 가로 27 cm, 세로 22.7 cm 크기의 지본담채화이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보물 제527호입니다. 이 그림은 일곱 명의 인물이 추수 작업 중인 장면을 담고 있는데, 특유의 ‘X자 구도’가 돋보입니다.
그림은 부감법으로 공중에서 바라본 시점이지만, 오른쪽 위에 담뱃대를 문 채 느긋하게 누워 있는 마름의 시선에서 시작된 구도가 자연스럽게 벗어 놓인 신발, 볏단을 내리치는 젊은 농부들, 비질하는 노인, 지게를 진 인물로 이어집니다. 이 그림에는 신분 차이로 인한 갈등과 대립 관계에 놓인 인물들이 함께 등장하지만, 서양 사실주의 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날카로운 현실 비판이나 충돌의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이는 김홍도가 그들을 해학과 절제된 중용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본담채는 종이에 가벼운 채색을 하는 그림을 말한다.
추수: 수확과 수탈 사이
화면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인물은 마름입니다. 짚단 위에 자리를 펴고 느긋하게 기대어 누운 모습인데, 앞에 놓인 술병을 보니 이미 술 한 잔을 걸쳤는지 갓이 머리에서 미끄러질 듯 위태롭게 얹혀 있습니다. 신발을 벗고 담배를 문 채 편안히 누운 그의 모습은 소작농의 노동과 대비되며, 계층 간 위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볏단을 힘차게 내리치는 젊은 농부의 표정에서는 수확의 기쁨을 읽을 수 있습니다. 벼를 털 때 날리는 볏짚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볏단을 단단히 묶는 작업이 필요했는데, 그림 속 가장 오른쪽 인물이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등을 돌린 인물은 힘을 다해 볏단을 내려치고 있으며, 옷자락이 들릴 정도로 동작이 격합니다. 발 아래 떨어진 낟알을 밟지 않기 위해서인지 그는 버선을 신은 채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왼손처럼 표현된 그의 오른손은 김홍도의 그림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일종의 조크로 해석됩니다. 그 뒤로 허리 굽혀 비질을 하는 노인의 모습은, 연령과 체력에 따른 자연스러운 작업 분장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왼쪽 위의 지게를 짊어진 인물은 수확한 볏단을 나르고 있으며, 그의 몸의 방향과 시선 흐름은 그림의 오른쪽 하단으로 이어지며 ‘X자 구도’의 또 다른 축을 형성합니다. 그 아래 상투를 틀지 않은 청년의 풀어헤진 웃옷과 굳은 표정은 육체적 피로뿐 아니라 심리적 고단함도 드러냅니다. 혹시 그가 소작농이었다면, 수확한 곡식의 절반 이상을 지주에게 넘기고, 그마저도 세금과 종자 값으로 다시 줄어드는 현실 앞에서 일할 의욕조차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하여 그의 어두운 표정은 단순한 피곤함이라기보다,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현실과 맞닥뜨린 젊은 농민의 복합적 감정을 반영하는 듯합니다.
이 당시 추수는 한 해 농사의 결실을 거두는 기쁨의 시간이지만, 동시에 가혹한 수탈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은 그 복합적인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심드렁한 마름, 웃는 농부, 굳은 표정의 총각, 보조 역할에 머무는 노인의 모습은 각자의 처지에서 겪는 희비가 교차하는 농촌의 현장을 섬세하게 드러냅니다. 특히 그림의 시작점에 위치한 마름의 존재는 단순한 배경 인물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복잡한 내면을 바라보는 시선의 주체일지도 모릅니다.
김홍도는 이 작품을 통해 타작하는 농민들의 고단한 삶과 감정을 당시 양반 계층이었을 감상자에게 조용히 호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는 현실을 꿰뚫는 통찰과 공감을 품은 회화로서, 단원의 풍속화가 단순한 민속 기록을 넘어선 이유를 설명해줍니다. 더 나아가, 이 장면은 오늘날 사업장에서의 중간관리자와 관리 받는 이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감까지도 은유적으로 떠올리게 합니다.
직업건강의 관점에서 본 농업인의 일과 삶
종종 농촌의 생활은 전원적이고 낭만적인 모습으로 미화되기도 합니다. 수확의 현장을 가족과 함께 걷는 장면, 들판 위의 여유로운 대화, 곡식 냄새 가득한 저녁 풍경 등은 한 폭의 목가적 이미지로 그려집니다. 하지만 현실은 온 가족이 함께해야 했던 육체적으로 고된 수동 노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러한 농업 생활에 대한 낭만적 묘사와 실제 농민의 비참한 노동 조건 사이의 불일치는 무려 한 세기 넘게 이어져 왔습니다.
곡식을 수확하고 타작하는 일은 겉보기엔 평화롭지만, 실상은 고된 육체노동과 날씨·일조 시간에 따른 시간적 압박까지 동반된 작업입니다. ‘타작’ 장면 속 농부들은 무거운 볏단을 들고 내리치며, 쪼그려 앉아 작업을 반복합니다. 이 모든 동작은 오늘날 직업의학에서 말하는 반복 작업, 강도 높은 상지 사용, 허리 굴곡, 무릎 부담자세에 따른 인간공학적 부담에 해당합니다.
또한, 수확한 볏짚에서 날리는 먼지와 분진은 호흡기계 위험, 즉 직업성 천식이나 과민성 폐렴(hypersensitivity alveolitis)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진에는 균, 곰팡이 포자, 박테리아, 곡물 단백질, 곤충 배설물 등이 포함돼 있기에, 반복 노출 시 심각한 호흡기계 질병 위험을 내포합니다. 현대 직업환경에서도 농업 기계화가 진행되었지만, 기계화는 분진량을 줄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소음, 진동, 신체접촉 상해 등 새로운 위험을 추가하기도 합니다.
〈 타작; 打作 〉은 단지 풍속화가 아니라, 농민의 삶을 통한 사회의 구조적 얼굴을 포착한 그림입니다. 18세기 농민의 고통은, 지금도 과로, 직장 내 역할 갈등, 근골격계 신체부담, 분진노출이라는 이름으로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노동자 건강을 다루는 직업환경의학이 ‘숫자’뿐 아니라 ‘감정’과 ‘관계’, 그리고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알려줍니다.
화가소개
단원 김홍도(金弘道, 1745~1806-1814 추정)는 중인 계층 출신으로, 7세 때부터 강세황에게 수학했습니다. 21세에 왕실소속의 공식 회화기관인 도화서(圖畫署) 화원이 되어 궁중 기록화, 인물화, 산수화, 풍속화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폭넓은 회화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그는 조선 후기 사회의 현실과 인간 군상을 해학과 통찰로 담아낸 풍속화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단원풍속화첩』은 그 대표적인 결실입니다.
이 화첩에는 ‘타작’ 외에도 대장간, 빨래터, 논갈이, 기와이기, 고기잡이, 길쌈, 주막, 씨름, 서당 등 다양한 노동과 일상의 장면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김홍도는 일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몸짓과 표정을 세심하게 포착함으로써, 단순한 민속기록을 넘어서 당대 민중의 삶과 노동, 그리고 감정까지 전달하는 사실적이고 공감 어린 풍속화를 완성했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때때로 네덜란드 황금기 회화에 비견될 만큼 사실성과 현장감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정명 작가의 [바람의 화원]은 정조 시대에 도화서를 중심으로 김홍도와 신윤복의 관계를 기발한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역사추리소설로, 궁중 화원들의 삶과 조선 회화 세계의 이면을 흥미롭게 그려내며 대중적 관심을 모은 바 있습니다.
참고문헌
- 국립중앙박물관. 단원풍속도첩 – 타작. https://www.museum.go.kr
- 손태호. (2019) 김홍도 ‘타작’. 법보신문
- Benos, L., Tsaopoulos, D., & Bochtis, D. (2020). A review on ergonomics in agriculture. Part I: Manual operations. Applied Sciences, 10(6), 1905.
- Kang, M. Y., Lee, M. J., Chung, H., Shin, D. H., Youn, K. W., Im, S. H., ... & Lee, K. S. (2016). Musculoskeletal disorders and agricultural risk factors among Korean farmers. Journal of agromedicine, 21(4), 353-363.
- Lacey, J., & Dutkiewicz, J. (1994). Bioaerosols and occupational lung disease. Journal of aerosol science, 25(8), 1371-1404.
- Wikipedia. Danwon pungsokdo cheop.
- Wikipedia. Kim Hong-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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