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맛있었던 해골물
깨달음을 얻기 위해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원효대사는 동굴에서 하루를 묵었습니다. 자다가 깬 원효대사는 목이 말랐고, 물을 찾다가 우연히 바가지에 담긴 물을 발견하게 됩니다. 목이 마른 상황에서 마신 물은 너무나 달콤했습니다. 그 덕분에 다시 편안하게 잠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동굴에 빛이 새어들어 왔습니다. 원효다사는 어제 그 맛있었던 물이 해골에 담겨있던 물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걸 알게된 순간 구역질이 올라왔습니다. 동시에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다. 이것이 화엄경의 유명한 구절인 ‘일체유심조’였습니다. 이는 스트레스의 발생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좋은 이야기입니다. 바로 스트레스 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 요인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스트레스 반응은 ‘인지적 평가’의 결과
스트레스는 어떻게 생겨날까요? 스트레스의 발생을 설명하는 이론 중 가장 유명한 이론은 아마 ‘스트레스와 대처에 대한 거래 모델(The Transactional Model of Stress and Coping)’일 것입니다. 이 이론은 스트레스의 발생은 인지적 평가(Cognitive appraisal)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인지적 평가 모델을 통해 스트레스 반응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모델에 따르면 스트레스는 다음과 같은 경로로 발생합니다:
- 지각 (Perception): 스트레스 요인이 있음을 알아차림
- 1차 평가 (Primary Appraisal):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평가 - 위협적인가, 큰 의미가 없는가, 이득인가 등.
- 2차 평가 (Secondary Appraisal): 스트레스 요인을 해결할 자원(방법)에 대해 평가.
- 대처 (Coping): 2차 평가 결과에 따라서 스트레스를 해결 - 문제 중심, 감정 중심.
- 재평가 (Reappraisal): 위의 과정을 반복.
- 학습 (Learning): 결과를 검토하고 학습.
여기서 1차 평가에서 스트레스 요인이 위협적인 것으로 여겨질수록, 2차 평가에서 스트레스 요인을 해결할 자원(방법)이 부족할수록 스트레스 반응이 커진다고 합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해결하려고 대처하고, 그 결과를 다시 재평가하고, 그 결과가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를 검토하며 ‘학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책] Stress, Appraisal, and Coping, 1984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것의 의미
최초에 원효 대사가 해골물을 마실 때에는 스트레스 반응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스트레스 요인이 제대로 지각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각 단계에서 바가지에 담긴 물이라고 착각(Misperception)하였기 때문에 애초에 1차 평가도 위협적으로 인식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지각되지 않은 스트레스 요인은 스트레스 반응을 불러일으킬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지각이 일어났습니다. 해골에 담겨있는 물임을 지각-인지하고, 이것이 더러운 것이라는 평가가 발생합니다. 여기까지가 1차 평가입니다. 여기서 한 차례 스트레스 반응이 발생합니다.
더러운 것을 먹었다는 1차 평가의 결과를 기반으로 2차 평가가 발생합니다. 이것을 해결할 방법을 탐색합니다. 그리고 우선적으로 이를 제거하려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2차 평가입니다.
그리고 구역질이 올라옵니다. 구토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대처입니다. 그리고 스트레스 요인을 해결하는 방법이므로 이것은 ‘문제 중심’의 대처입니다.
하지만 구역질이 올라오다가 왜 지금까지 괜찮았는지를 떠올리며 깨달음을 얻습니다. 이것은 재평가입니다. 그리고 스트레스 요인인 해골물이 ‘더러운 것’에서 ‘마음먹기에 달린 것’으로 재평가됩니다. 스트레스 요인인 해골물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완화시킨 것이므로 이것은 ‘감정 중심’의 대처가 됩니다. 그리고 더 이상 스트레스 요인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으므로 대처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서 또 다시 이 대처 방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학습’하게 됩니다.
결국 스트레스 반응은 스트레스 요인과 그에 대한 대처에 대한 인지적 평가에 따라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은 이 인지적 평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스트레스 반응 공식
스트레스 반응을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해보고자, 저는 이렇게 공식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스트레스 반응 = 스트레스 요인(=1차 평가)/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2차평가)
이 공식을 적용해 스트레스 반응의 변화를 이해해보겠습니다.
먼저, 분자인 ‘스트레스 요인’이 클수록, 즉 상황이 더 위협적이고 도전적일수록 스트레스 반응은 증가합니다.
반면, 분모인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이 많을수록, 즉 개인이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자원이 충분할수록 스트레스 반응은 감소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학생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학생이 시험에 대해 갖게 되는 스트레스 반응은 공식을 이용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해볼 수 있습니다.
시험에 대한 스트레스 = 시험의 중요도/시험의 준비 정도
이 학생에게 시험이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큰 스트레스 요인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학생이 충분히 공부를 하여 시험 준비가 잘 되어 있고, 친구와 가족의 지원을 받고 있다면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이 많아집니다. 따라서 이 학생의 스트레스 반응은 줄어들게 됩니다. 반면, 시험 준비가 부족하고 이러한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는 스트레스 반응이 크게 나타날 것입니다.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Coping)
원효 대사님의 일화에서도 ‘대처’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였지만, 이번에는 시험을 앞둔 학생의 예시를 가지고 좀 더 자세히 다루어보겠습니다.
‘시험으로 스트레스를 느끼게 된 학생은 시험에 대한 준비를 시작합니다. 시험 공부를 위한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서적을 찾아서 공부합니다. 시험 준비 도중 불안감이 들면 "이 시험은 내 능력을 확인하는 기회"라고 되뇌며 마음을 다잡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끝내고 나면 가족들에게 시험 준비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는 심정을 얘기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학생은 시험과 관련하여 스트레스 반응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 반응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처’를 시도하였습니다.
라자루스는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문제 중심 대처 전략(Problem-focused coping)과 감정 중심 대처 전략(Emotion-focused coping)입니다.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문제 중심 대처 전략 (Problem-focused coping)
문제 중심 대처 전략은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거나 줄이기 위해 직접적인 행동을 취하는 방법입니다. 이 전략은 시험과 같은 해결 가능한 문제일 때 가장 효과적입니다. 목표는 상황을 개선하거나 스트레스 요인을 해결함으로써 스트레스 반응을 감소시키는 것입니다.
감정 중심 대처 전략 (Emotion-focused coping)
감정 중심 대처 전략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발생하는 부정적인 감정을 관리하고 완화하는 방법입니다. 이 전략은 스트레스 요인을 직접적으로 해결할 수 없거나, 문제의 해결이 시간이 걸릴 때 유용합니다. 목표는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 두려움, 분노 등의 감정을 조절하고,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입니다.
두 전략의 병행
둘 중 하나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두 방법을 모두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더 효과적입니다.
학생의 대처 중 시험 공부를 계획하고 준비한 것은 ‘문제 중심 대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시험의 불안감을 다스리기 위해 스스로 다짐한 것과 가족에게 시험 준비의 스트레스를 토로하고 지지를 받은 것은 감정 중심 대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스트레스 상황에서 문제 중심 대처 전략과 감정 중심 대처 전략을 함께 사용하면, 스트레스 요인을 해결하면서 동시에 부정적인 감정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보다 효과적으로 스트레스 반응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