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젠더를 빼고 말할 수 있다고?
시간은 누구에게나 평등할까?
영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모범생 헤르미온느는 자신이 지닌 목걸이 ‘타임터너’로 몇 번이나 시간을 되돌려 동시간에 열리는 여러 수업에 참석합니다. 덕분에 모든 인간에게 24시간으로 똑같이 주어진 자원인 ‘시간’을 여러 겹으로 겹쳐 쓸 수 있게 됩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똑같이 주어집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평등하게 활용되지는 않습니다.
시간빈곤
시간빈곤(time poverty, time-poor)은 노동시간과 필수시간을 제외한 자유시간의 부족상태를 말합니다. 노동시간은 유급 노동시간과 가사노동과 자녀돌봄과 같은 무급 노동시간을 포함합니다. 필수시간은 개인위생과 식사와 같은 시간을 의미합니다.
시간빈곤은 자유시간 자체가 양적으로 부족한 경우 (양적인 측면)와 시간사용의 자기결정권이 부족한 경우(질적인 측면)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소득이 많은 사람은 자유시간이 부족하면(money-rich, time-poor), 타인의 노동을 구매해 자유시간을 늘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소득이 부족한 사람은 노동시간을 늘리기 위해 본인의 자유시간을 희생합니다(money-poor, time-poor).
시간불평등
시간빈곤의 차이는 성별과 연령, 소득과 고용상 지위에 따라 달라집니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을수록 표준노동시간에서 멀어질 뿐 아니라, 시간 사용에 대한 자기결정권도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저소득층은 장시간 노동으로 소득을 올리면서 자유시간을 희생해왔습니다. 그러나 불안정한 고용 여건 때문에 소득빈곤(money-poor)과 시간빈곤(time-poor) 사이를 오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시간빈곤은 성별, 소득규모에 따라 차등적으로 나타나고 이런 구조가 지속된다는 점에서 시간 불평등으로 이어집니다. 2017년 수행된 한 연구에서는 자녀와 배우자가 있는 여성 가구주의 경우 유급노동, 가사노동, 돌봄노동이 중첩되어 시간빈곤율*이 가장 높았습니다.1)
*시간빈곤율은 1주 168시간‘에서 노동관련 시간 (업무·출퇴근·부업)과 가사·돌봄시간 (자녀양육시간, 요리·집안일, 노인·장애가족 돌봄)’을 뺀 자유시간을 기준으로 계산됨
여성의 노동시간은 남성보다 짧다
세계노동기구는 주당 최대 48시간의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잡고 있습니다. 이 기준은 1930년에 정해졌고, 현재도 많은 국가에서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채택하고 있습니다. 당시는 전일제 유급노동은 남성이 전담하고 가정 내 돌봄 노동은 여성이 전담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상황이 변하여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크게 증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OECD 국가에서 여성의 유급노동 시간은 남성보다 주당 10시간 짧습니다.
여성의 짧은 노동시간의 의미
사실 여성의 짧은 유급노동 시간은 노동시장 내에서 불리한 처지를 반영하는 지표라 할 수 있습니다. 장시간 근무는 대개 숙련직, 보수가 좋은 <좋은 일자리>와 관련이 있는 반면, 여성, 저숙련 노동자들은 대개 저임금, 노동 시간이 짧은 시간제 일자리에 근무하게 됩니다. 여성 노동자들은 돌봄과 가사노동이라는 책임을 안은 채로 노동시장에서 경쟁해야하는 처지에 놓이는 셈입니다.
여성친화적 일자리의 효과
더욱이 지난 10여년 간 한국 사회에서는 저출산 문제의 해결책으로 여성친화적 시간제 일자리를 늘려온 바 있습니다. 여성에게 가정에서 양육과 돌봄을 보장하기 위해 파트타임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제 일자리는 임금수준이 낮고 쉴 권리, 퇴직금 등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적 울타리 밖에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여성 노동자를 주변화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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