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판 업무적합성 평가 Fit note
김수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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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업무적합성 평가는 '근로자의 업무 수행 가능 여부'에 초점을 둡니다. 이러한 접근은 근로자가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데 신체적, 정신적 제한이 있는지를 주로 살펴보게 합니다. 하지만 근로자가 업무에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노력을 덜 하게 됩니다.
근로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업무제한이나 업무전환 결정이 내려진다면, 근로자와 그의 가족에게는 자존감의 감소, 사회적 고립, 경제적 곤란을 겪게 합니다. 사회적으로는 노동력의 손실을 초래합니다.
업무적합성 평가가 '업무 수행가능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만약 업무적합성 평가가 "업무 수행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근무할 수 있게 만드는 적절한 조치를 권고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요? 업무적합성 평가를 통해 근로자가 최대한 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근로자 개인 뿐 아니라 그 가족과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요? 영국에서는 2010년에 실제로 이러한 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Sick note제도를 Fit note제도로 변경한 것이죠. 이번 글에서는 영국의 ‘fit note’ 제도를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업무적합성 평가제도의 변화를 위한 시사점을 얻어보려고 합니다.
Fit note란?
Fit note는 2010년부터 시행된 영국의 업무적합성 평가제도를 말합니다. 영국은 7일 이상의 질환에 대한 업무복귀 시 의료전문가에게 업무적합성 평가받아 고용주에게 제출해야 합니다. Fit note를 제출해야만 법정병가수당을 수령할 수 있습니다. 이전 제도인 Sick note는 업무에 복귀하는 근로자의 건강상태와 함께 업무에 적합한지 여부만 기록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절차가 보편적으로 원활하게 수행될 수 있도록, 대면 상담 뿐만 아니라 전화나 온라인 상담을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의료전문가가 작성한 보고서를 기반으로 적합성 평가를 작성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2022년 7월 1일부터는 의사 외에 간호사, 작업치료사, 약사, 물리치료사가 Fit note를 발행하고 인증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Fit note에 대한 설명과 가이드 웹페이지(영국 노동연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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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t note의 평가방법
Fit note의 정식명칭은 “사회보장 및 병가수당을 위한 업무적합성 소견서”입니다. 우리나라 업무적합성평가 서식보다는 간소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한 페이지 짜리 문서입니다. 환자의 인적사항, 의사의 서명과 주소 등과 같은 행정적 사항을 제외한 핵심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업무적합성에 영향을 미치는 건강상태에 대해 정확한 진단명을 기술합니다.
둘째, 업무수행에 적합하지 않거나(not fit), 다음과 같은 조언(advice)를 고려하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may be fit) 중 하나를 선택합니다. 별도로 이 소견서가 적용되는 기간을 명시합니다.
셋째, 고용주의 동의가 있고, 실행할 수 있다면 받을 수 있는 혜택(benefit)을 선택하게 됩니다. 1) 단계적 업무복귀 2)업무변경 3)근무시간조정 4)직장적응 4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유를 적어야 합니다.
의사는 판정자가 아닌 조언자가 되어야
Fit note는 고용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지향합니다. Fit note의 기본 원칙은 환자가 ‘불가능한 업무’에 집중하는 대신 ‘가능한 업무’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즉, ‘Fit Note’는 환자가 업무에 복귀할 수 있는 조건과 필요한 조정 사항들을 명시함으로써, 환자가 업무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환자가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일하기에 적합할 것입니다(may be fit for work)”를 선택해야 합니다. “not fit”라고 판단한다면, 실직의 장기적인 위험까지 고려한 후 선택해야 합니다. Fit note가 제출되면, 업무에 복귀하는 근로자와 고용주는 의료전문가의 조언을 수용할 것인지, 그리고 변경하여 반영해야 할 사항이 있는지 논의해야 합니다.
Fit note가 도입된 배경
영국에서 ‘Fit Note’가 도입된 배경에는 근로자의 장기결근이 개인과 사회에 막대한 비용을 초래한다는 인식이 있었습니다. 영국의 건강불평등에 대한 보고서인 블랙보고서는 장기결근의 원인이 의사(GP)의 the process of sick certification 에 있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영국에서는 이러한 문제로 인한 노동력 손실이 매년 약 14억 파운드(한화로 약 2조 3천 6백억원)의 손실이 있다고 합니다. 이는 개인의 사회적 배제, 건강 불평등의 확대, 재정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맥락에서 ‘Fit Note’는 의사가 단순히 업무 불능 상태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고용주에게 업무를 조정하는 조언을 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환자의 업무 복귀를 촉진하고 장기적인 병가로 인한 노동력 손실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줄이고자 하였습니다.
Fit note는 어떤 성과를 가져왔는가?
‘Fit Note’는 환자의 업무 복귀를 지원하고, 사회적 참여를 증진시켜 환자의 건강과 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습니다. 북유럽 국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질병자에 대한 근무시간단축 허용이 장기적인 직업 및 건강 결과를 향상시켰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실제 영국의 Fit note의 성과는 어떠하였을까요? ‘Fit Note’의 도입이후 기존 Sick note의 선택지에는 없었던 ‘maybe fit (조건부 업무 가능)’를 권고한 경우가 연구대상집단에 따라 3.5%에서 32% 까지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권고는 일반의사에 비해서 직업의학(DipOccMed)자격을 가진 의사들이 ‘maybe fit (조건부 업무 가능)’를 더 많이 권고하였습니다.
‘maybe fit (조건부 업무 가능)’를 받은 근로자 중 42%는 업무 수정, 37%는 단계적 복귀, 22%는 근무 시간 변경, 10%는 직장 적응을 권고받았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maybe fit
(조건부 업무 가능)’를 받은 근로자의 80%가 업무에 복귀하였고, ‘not fit’에서는 43%에서 업무에 복귀하였습니다. “maybe fit (조건부 업무 가능)’로 판단되어 개선에 대한 조언을 받은 경우 장기간 질병결근이나 다른 질병에 걸릴 가능성이 낮았습니다. 그러나, 정신건강장애가 있는 경우에는 반대의 결과를 보였습니다.
[논문] 영국의 fit note에 대한 체계적 검토, 2018
Fit note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
Fit note에 관한 체계적 연구는 아직 부족합니다. 일부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의도한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연구를 통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여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Fit Note'의 발전을 위해 어떠한 것들을 고려할 수 있을까요?
첫째, 의사들에게 Fit note 작성을 위한 전문적인 훈련 제공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Fit Note' 작성 시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을 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위의 정신건강 문제의 fit note 사례와 같이 근로자의 개별적인 상황을 고려한 더 유연하고 맞춤화된 접근법 개발해야합니다.
두번째, 고용주와 의료 전문가 사이 더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여 Fit note의 조언이 잘 반영되는 환경을 조성해야합니다. 이를 위해 고용주와 의료 전문가 사이 더 긴밀한 협력 체계가 필요합니다.
세번째, ‘Fit Note'와 관련된 법적 기반을 강화하여,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업무 복귀를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일 것입니다. 이는 고용주가 'Fit Note'의 권고를 실제로 적용할 수 있도록 장려할 뿐 아니라 근로자의 건강과 업무 복귀를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하게 할 것입니다.
인구감소와 양극화에 대처하기 위한 Fit note의 중요성
우리나라도 노동인구가 감소하고, 양극화로 인한 건강불평등의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포용적이고, 생산적인 노동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Fit note는 근로자의 성공적인 업무복귀를 촉진하고, 장기결근으로 인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줄이는데 기여하는 방법입니다. 이는 근로자의 건강 관리를 넘어서는 것으로, 근로자의 일할 기회를 보장하고 더 건강한 사회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영국의 'Fit Note'와 같은 시스템은 심각한 노동인구 감소와 양극화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시사점이 큽니다.
글쓴이: 김수현 (광주근로자건강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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