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
"인간은 일을 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고, 일을 하려면 건강해야 합니다."
Hans Martin Hasselhorn. 2016
Brussels, INCOSE(International Conference on Sustainable Employability)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경제적인 목적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일을 통한 루틴 활동은 육체적 및 정신적인 건강 유지에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는 아래 논문을 통해 실업상태인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보다 정신건강이 좋지 않음을 보고한 바 있습니다.
[논문] 한국에서 실직자와 노동자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문제의 비교
또한, 새로운 일자리를 얻거나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려고 할 때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즉 그 일이 필요로 하는 만큼의 노동능력을 유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 글을 통해 노동자가 노동능력을 유지하고,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직업환경의학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분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노동능력 상실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건강문제는?
노동자의 노동능력을 상실케 하는 주요 건강문제가 뇌심혈관질환과 근골격계질환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는지요? 뇌심혈관질환과 근골격계질환은 한국의 장애보정생존년수(DALYs)에서 압도적인 1,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장애보정생존년수는 질병, 장애 또는 조기 사망으로 인해 손실된 연수로 표시되는 질병부담의 척도입니다. 바꾸어 말해 뇌심혈관질환과 근골격계질환은 업무상질병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한창 일할 나이에 있는 노동자의 노동능력을 앗아가는 주범이라는 의미입니다.
[논문] 2008-2018년 한국의 질병부담 측정
1차 예방을 위한 우리의 노력은 효과적일까요?
겉으로는 건강해 보이던 사람에게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은 작업관련요인개선, 생활습관개선과 같은 1차 예방으로 80% 이상 예방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해마다 실시하는 노동자 일반건강진단이 뇌심혈관질환의 1차 예방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으며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은 이에 어떻게 관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3년마다 한번씩 근골격계부담작업 유해요인조사를 하고 있는데,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이 근골격계질환 예방에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자문해 봅니다.
근골격계질환 예방에서 소외되는 직업환경의학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660조(통지 및 사후조치)에 근로자가 증상을 호소하면 사업주는 이에 대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해 조금 빠른 단계에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이에 대해서 구체적인 액션을 취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만 증상이 만성화되어 근골격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산재처리를 도와주기 위해 업무상질병 심의에 참여하는 것이 어느덧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의 주된 역할이 되었습니다.
[가이드] KOSHA Guide H-68-2012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한 의학적 조치에 관한 지침’
근골격계질환으로 인한 노동능력의 상실에 주목해야
일전에 매일노동뉴스에 산재로 인정받은 근골격계질환 환자가 재활치료가 부실하여 다시 업무로 복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걱정하는 내용이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기사] 근골격계 산재노동자들이 생각해야 할 것 (김양호)
다시 업무에 복귀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만성 근골격계질환으로 진행된 상태에서는 무슨 일을 하든 결국 재발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노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또 업무상이든 아니든 한창 일할 나이의 노동자에게 갑작스럽게 뇌졸중이나 심근경색증이 발생하고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사망하거나 영구적인 후유증이 남게 되어 노동능력을 잃게 됩니다. 노동능력을 잃는다는 것은 곧 삶의 질이 저하된다는 것이고, 국가적으로는 빠른 고령화 추세로 가뜩이나 부족한 노동력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질환이 발생하기 전 예방교육이 중요
뇌심혈관질환은 건강한 생활습관을 잘 지켜온 사람이 단지 장시간근로를 한다고 해서 발병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만이나 고혈압이 나타나기 전이라도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을 가진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적극적인 예방교육이 필요하고, 아울러 조직문화도 개선되어야 됩니다. 기능제한을 동반한 근골격계질환으로 업무관련성을 인정받으려면 부위에 따라 5년 이상 또는 10년 이상의 근무경력이 있어야 합니다. 근골격계증상이 만성화되기 전 단계에서 예방에 더 관심을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관리감독자 안전보건교육을 통해 관리감독자들이 노동자들에게 바른 작업 자세와 바른 작업동작을 잘 가르치게 하고, 작업 틈틈이 스트레칭을 습관화하도록 훈련시킨다면 근골격계질환의 상당부분이 예방될 것입니다.
질병보상을 넘어 질병예방으로
‘업무관련성평가’는 다른 임상의학과 구별되는 직업환경의학의 전문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다 보니, 업무상질병을 진단하거나, 심의 또는 승인 여부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어느덧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의 주된 역할이 되어, 예방이라는 측면은 관심사에서 멀어진 것 같습니다. 노동자의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지켜주는 것도 작업현장을 잘 아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이 잘할 수 있고 또 보람도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