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기록으로 넘쳐나는 산업보건 현장, 정작 분석 가능한 데이터는 잘 남지 않습니다. 지금 산업보건현장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록보다는 더 나은 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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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산업보건 데이터가 왜 AI를 만나기 어려운지 이야기했습니다.
먹지에 눌러쓴 기록, 스캔된 PDF, 제각각의 자유서술 문서들. 현장에는 분명 기록이 넘치는데, 정작 분석 가능한 데이터는 잘 남지 않는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자연스럽습니다. 거대한 표준화와 시스템 개편이 오기 전까지, 현장에서는 무엇부터 바뀌어야 할까요?
저는 그 답이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기록 양식이 아니라, 더 나은 도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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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보건 현장에는 기록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무 많습니다.
한글 문서가 있고, 엑셀 파일이 있고, 워드 문서가 있고, 스캔한 PDF가 있습니다. 태블릿으로 PDF 캡처본 위에 펜으로 메모를 남기는 방식도 흔합니다. 겉보기에는 분명 디지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자주 생기는 착각이 하나 있습니다. 컴퓨터로 작성했다고 해서 데이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해진 양식 위에 글을 쓰는 것과, 나중에 다시 꺼내 쓸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에 정보가 축적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문서는 남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데이터는 누적되어야 하고, 검색되어야 하며, 이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몇 달 전에 상담했던 근로자가 다시 찾아왔다고 해보겠습니다.
“예전에 한 번 왔던 것 같은데…”라는 기억은 있어도, 언제 왔는지, 무슨 상담을 했는지, 그 뒤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바로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다시 폴더를 엽니다. 비슷한 제목의 파일을 하나씩 눌러 봅니다. 결국 못 찾으면 같은 질문을 다시 하게 됩니다. 기록은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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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는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쓰면 전산화가 됐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하지만 한글, 엑셀, 워드, 또는 캡처된 PDF 위에 입력한 내용은 대부분 문서 파일로 남을 뿐입니다. 이 방식은 문서를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누가 언제 왔는지, 어떤 상담이 반복되는지, 이전 기록과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한눈에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즉, 이것은 엄밀히 말해 전산화라기보다 전자문서화에 가깝습니다.
둘의 차이는 작지 않습니다. 전자문서화는 종이를 파일로 바꾸는 일입니다. 전산화는 정보를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구조로 바꾸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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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직업환경의학 현장에서 일하면서 이런 장면을 여러 번 봤습니다. 먹지를 쓰고, 출력물에 손으로 적고, PDF 캡처본 위에 태블릿 펜으로 메모하는 방식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성실하게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기록이 나중에 잘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들었던 생각은 단순했습니다. 처음부터 거대한 플랫폼이 아니어도, 기록이 사람 단위로 모이고 시간 순서대로 쌓이는 작은 도구만 있어도 실무는 꽤 달라질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가 언제 왔는지 보이고, 무슨 상담을 했는지 이어서 볼 수 있고, 반복되는 문서를 조금 더 쉽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업무의 흐름은 분명 달라집니다.
산업보건 현장에는 늘 대단한 기술이 먼저 필요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작지만 축적되는 도구가 더 절실할 때가 많습니다.
저는 실천하고 만들고 제공하고 개선하는 쪽을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직업환경의학 현장에서 먹지와 PDF, 파일 중심 기록의 한계를 반복해서 보면서도, 그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데서 멈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병원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덜 불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그리고 기록이 단순한 파일이 아니라 축적되는 정보가 될 수 있도록,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지금은 무료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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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도구가 있다고 해서 현장이 자동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는 무료 툴이 있어도 적용을 미루는 경우를 적지 않게 봤습니다.
기존 방식이 더 익숙하고, 새로운 방식을 배우는 일이 번거롭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으니 굳이 바꿀 필요를 못 느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건 산업보건 현장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사람은 원래 익숙한 방식을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일단 적용한 사람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았다는 것입니다.
이전 기록을 쉽게 찾을 수 있고, 상담 내용이 이어지고, 반복 문서 작업이 줄어들면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결국 현장에 필요한 것은 더 좋은 도구만이 아닙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변화를 받아들이려는 태도도 함께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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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보건관리자들을 보면 늘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대부분은 정말 열정적입니다. 근로자 상태를 놓치지 않으려 하고, 상담 내용을 남기려 하고, 더 체계적으로 관리해 보려 합니다.
그런데 그 열정이 낡은 도구 안에 갇혀 버리면, 업무는 자꾸 처음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이전 기록을 찾는 데 시간이 들고, 같은 내용을 반복 입력하게 되고, 문서 정리에 하루가 소모됩니다.
그 시간은 사실 더 중요한 일에 쓰여야 합니다. 이상 신호를 빨리 발견하고, 반복되는 문제를 추적하고, 필요한 조치를 연결하는 일 말입니다.
산업보건의 디지털 전환을 이야기할 때 거대한 시스템만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물론 그런 변화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늘 오늘의 상담이 있고, 오늘 작성해야 할 기록이 있고, 이번 달에 챙겨야 할 관리 대상자가 있습니다.
그 공백을 메워 주는 것은 대개 작고 실용적인 도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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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이런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분이라면, 완벽한 미래 시스템만 기다리기보다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작은 도구부터 현장에 들여보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저 역시 인더닥터를 운영하며 일부 실무용 프로그램을 현재 무료로 공개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페이지에서 내용을 확인해 보실 수 있습니다.
주변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실무자가 있다면, 이런 도구가 있다는 사실을 서로 알려 주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현장의 변화는 거창한 구호보다, 실제로 써볼 수 있는 도구가 조용히 퍼져 나갈 때 더 빨리 시작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서비스를 선택하는 일이 아닙니다. 산업보건 현장이 ‘파일을 많이 남기는 체계’에서 ‘기록이 누적되는 체계’로 한 걸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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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를 만드는 일을 넘어 데이터를 남기는 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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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지에서 PDF로 넘어온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종이를 파일로 바꾸는 데서 멈추면, 우리는 여전히 예전 방식의 연장선 위에 있을 뿐입니다. 이제는 문서를 많이 만드는 체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기록이 다시 찾아지고, 이어지고, 비교되고, 축적될 수 있어야 합니다. 산업보건의 변화는 거대한 기술 용어에서만 시작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상담실 한구석, 보건관리자의 노트북 화면, 현장 방문 뒤 남겨지는 기록 방식 같은 아주 사소한 곳에서 먼저 시작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결국 산업보건 현장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기록이 아닙니다. 더 나은 도구, 그리고 그 도구를 실제로 써보려는 작지만 분명한 변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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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먹지'의 늪에서 'AI 예방 의학'의 시대로
김수근(국제나은병원 특검센터 원장)
이번 칼럼은 2026년이라는 고도의 디지털 시대와 '먹지'로 대변되는 산업보건 현장의 처참한 민낯을 날카롭게 대비시키며, 우리 시대의 디지털 문맹을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문제 제기에서 해결 방안으로 이어지는 논리적 흐름[문제 제기(아날로그 현황) → 원인 분석(K2B의 구조적 한계) → 해외 사례(독일, 프랑스, 핀란드) → 해결 방안(3단계 로드맵)]에 깊이 공감하며, 현장의 전문가로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보완 대책을 제언하고자 합니다.
1. 기술적 공백을 메울 '과도기적 데이터 전환' 전략 정부의 표준 강제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현장 데이터의 '먹지 상태‘를 해결할 즉각적인 처방이 필요합니다. 산업보건 현장의 '먹지 보고서'나 '수기 문서'는 단순히 종이에 글자를 적는 행위로 끝나지 않습니다. 진짜 비극은 그 종이 위의 정보를 다시 디지털 데이터(엑셀, 시스템)로 옮기는 과정에서 발생합니다.
해결방법으로 산업보건 특화 엣지 AI OCR을 도입해서 기존의 모든 비정형 문서를 디지털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문자인식을 넘어, 복잡한 산업보건 서식의 표 구조(Table Structure)를 사전 학습한 모델을 도입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데이터 오인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실무자들을 단순 타이핑 업무에서 해방시켜야 합니다. 영세한 전문기관들이 비용 부담 없이 ’종이 없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산업보건 디지털 바우처' 지원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2. '의미론적 표준(Semantic Standard)'의 정립과 표준화 산업보건 데이터 표준화는 단순히 '입력 양식을 통일하는 것'을 넘어, 기계(AI)와 사람, 그리고 서로 다른 기관이 같은 언어로 대화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컬럼에서 제시한 바와 같이 가장 시급한 것은 텍스트로 된 정보를 국제 공통 코드로 변환하는 것입니다.
화학물질은 전 세계 공통 식별 번호인 CAS 번호를 필수값으로 설정합니다. 직종은 한국표준직업분류(KSCO)나 국제표준직업분류(ISCO) 코드를 활용하여 "어떤 일을 하다가 노출되었는지"를 기계가 그룹화할 수 있게 합니다. 임상에서 쓰는 국제질병분류(ICD-10/11) 및 LOINC(검사결과 표준코드)를 도입하여, 산업보건 데이터가 일반 의료 데이터와 결합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용어 및 코드 표준화 (Semantic Standard)를 바탕으로 입력단계에서 통제가 필요합니다. 칼럼에서 제시하였듯이 물질명이나 공정명을 직접 타이핑하는 것이 아니라, 검색 및 드롭다운(Drop-down) 방식으로 선택하게 강제합니다. 여기에서 아직 공정명 표준화가 안되어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공정표준화를 위한 공정명 코드를 약 1,300개 정도를 제안한 적이 있으나 이를 업그레이드 하지 못하고 35년이 지나버렸습니다.
직업분류는 있지만 과연 산업보건 현장에서 이를 일관성 있게 입력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방금 지하철 공사현장에서 배치전 검진을 하러 온 노동자가 터널공이라고 합니다. 한국표준직업분류에는 터널 및 굴착공(77222)으로 되어 있고 직무는 천공 및 발파, 굴착 및 버럭 처리, 지보공 설티, 락볼트 시공, 터널 라이닝 등 매우 다양합니다. 현장에 따라서는 이들 개별 직무별로 직종을 부르기도 하고, 두 세가지만 직무를 맡아서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에 산업보건에서 활용할 수 있는 표준 직업분류를 도출하는 것이 선결될 필요가 있겠습니다. 서로 다른 기관(사업장, 산업보건기관, 노동부 등)이 각자 다른 방식으로 저장하고 있는 데이터를, 동일한 구조와 규격으로 변환하여 분석할 수 있도록 만든 표준 데이터 설계를 해야 합니다. 표준 규격을 준수하여 데이터를 전송하는 측정·검진 기관에 가산점을 부여하고, 장기적으로는 표준 규격 미준수 시 보고서 수리를 거부하는 강력한 정책 전환이 필요합니다.
먹지와 디지털 문맹을 탈출하기 위해서 기술적 공백을 메울 과도기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규모 보건관리전문기관과 특수건강진단기관 및 작업환경측정기관에서는 단순한 업무용 표준화와 전산화도 엄두를 못냅니다. 소규모 전문기관들이 비용 부담 없이 '종이 없는 점검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비용 지원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아울러 데이터 주권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이직 시마다 끊어지는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근로자의 앱(QR 코드 권한 부여)으로 연결할 수 있게 하고, 산업보건이 그들만의 리그를 넘어 사회적 지지를 얻으려면, 데이터가 '나의 건강 및 안전'과 직결됨을 증명해야 합니다.
노동자가 취급 물질을 검색하면 AI 챗봇이 위험성과 보호구 정보를 즉시 안내하고, 이 기록이 특수건강진단 시 의사에게 자동으로 전송되는 '상시 기록 체계'가 구축되어야 합니다. 이는 불확실한 기억에 의존하던 기존 문진의 한계를 극복하는 핵심 열쇠가 될 것입니다.
산업보건의 데이터가 '잠자는 PDF'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예측 도구'로 거듭나는 그날까지, 오늘 컬럼과 같은 날카로운 비평과 대안 제시가 계속되길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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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구독자의 의견
구독자A
산업보건 데이터관리의 현실에 대한 경각심을 주는 좋은 기고였습니다. 정부가 해야할일과 현장의 보건관리자가 해야할 일 혹은 할 수 있는일이 섞여있는데 독자를 분리한 맞춤형 글이 된다면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이런 현실을 알게 해주는 글도 좋지만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실제 현장의 보건관리자의 역량에 맞추어 초급/중급/고급 ai 실무활용법을 정리해주시면 반응이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독자B
보건관리자의 실무에 엑셀 데이터를 계약서상 명시하라고 하는데, 사실상 이러지 못하는 경우도 정말 많습니다. 서울권은 다양한 경쟁권이 있기 때문에 해줄수 있겠지만, 서울경기 지방권은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엑셀의 요청을 한다면 못해준다고 하는데도 있으며, 심지어 의사 결과지 또한 수기로작성되어 전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 심한 곳은 프린터를 한 후 PDF로 전달주는 곳들도 있습니다. 지방엔 수기로 아직도 하는 기관들이 터무니 없이 많습니다. 이런 의료를 서울.경기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도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한 움직임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그래서 저는 제언을 의료기관의 전수추적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시스템이 돌아갈수 있도록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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