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를 반복해도 콜레스테롤 수치가 개선되지 않은 이유
검사를 반복해도 수검자들 혹은 근로자들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검사를 너무 자주 했기 때문이 아니라,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출 수 있는 제대로 된 건강진단 사후관리가 뒤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상지질혈증은 고혈압과 더불어 한국에서 2번째로 가장 많은 사망자를 유발하는 심뇌혈관질환의 가장 중요한 위험인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레스테롤 검사를 4년마다 하도록 한 결정은 본말이 전도된 결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일반인은 이상지질혈증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니 당연히 관리가 소홀해지고, 이상지질혈증이 있다고 알려도 개선되기는 커녕 몇 년에 걸쳐 서서히 상태가 악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면 보건당국과 의사들은 유소견자들에게 이상지질혈증의 중요성, 이상지질혈증이 발생한 원인, 이상지질혈증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생활습관의학적 관리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애써야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관리를 위해 한 걸음 더 내딛기보다는 아예 포기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특수건강진단도 개선하고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상황이 이렇다 보니, 특수건강진단도 그 존재 이유를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건보 건강검진에서 사라지는 항목들을 특수건강진단에서 흡수해 매년 검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는데, 특수건강진단을 받는 근로자들의 경우에도 이상지질혈증 검사를 통해 콜레스테롤 수치가 더 개선된다는 결과를 제시하기 어려웠습니다. 특수건강진단의 경우 건보 건강검진보다 유소견자를 좀 더 꼼꼼하게 관리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눈에 띌 정도의 분명한 성과를 내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관리할 수 있는 구조는 있지만,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이 이를 활용해 성과를 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구조도 아닐 뿐더러, 이상지질혈증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는 생활습관의학적 관리방법이 아직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서 살펴본 것처럼 직업환경의학의 역할에 대해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 사이의 견해도 다양했습니다.
2017년 ‘특수건강진단 검사항목 현행화 및 실무지침 개정’ 연구는 충분한 논의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단 몇 개월 만에 보고서를 제출하며 마무리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해당 보고서를 보고 싶으시면 링크는 아래를 클릭하세요
2017년 ‘특수건강진단 검사항목 현행화 및 실무지침 개정’ 보고서 요약
2017년 ‘특수건강진단 검사항목 현행화 및 실무지침 개정’ 보고서 다운로드
업무적 요인과 개인적 요인의 대립
이제 다시 “생활습관의학은 산업의학의 반대야!”라는 말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그 교수님은 직업환경의학은 외부 환경적 요인의 영향에 의한 건강영향을 판단하고, 그 외부적 요인을 관리하는 분야인데, 생활습관은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근로자 개인의 내재적 요인이기 때문에 정반대일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가령 어떤 근로자가 유기용제를 취급하다 간수치가 증가했을 경우, 직업환경의학의 관점은 유기용제의 영향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반면 생활습관의학의 관점은 그 근로자가 음주를 하는지, 신체활동은 어떤지, 지방간을 유발할 수 있는 음식들을 많이 먹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의 다양한 생활습관 요인에 더 집중하기 때문에 직업환경의학의 반대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은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나 근로복지공단 자문을 통해 끊임없이 업무적 요인과 개인적 요인에 대한 경중을 따지며 업무관련성 평가를 합니다. 이때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들은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들이 보다 안정적으로 치료를 받고 건강을 회복해 다시 생산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업무적 요인에 대해 좀 더 고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 교수님의 견해에 저도 일정 부분 공감합니다.
특수건강진단의 목표는 노동자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
그러나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업무관련성 평가만은 아닙니다. 업무적으로 노출되는 유해인자로 인한 문제보다, 좋지 않은 생활습관들이 근로자들의 건강을 악화시키거나 업무적 유해인자의 건강영향을 더욱 증폭시키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뇌심혈관질환입니다. 뇌심혈관질환은 업무관련성 유무와 상관없이 근로자 개인에게 매우 큰 피해를 남기고, 사업장에도 매우 큰 부담을 초래하고, 작업현장에서의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설사 교대근무나, 과로, 직무스트레스, 다양한 화학물질과 관련하여 업무관련성을 인정받아 치료비를 지원받는다 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사망하게 된 경우라면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수단을 동원에서 뇌심혈관질환을 예방하고, 설사 발병하더라도 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는 다른 어떤 의사들보다 근로자들에 대한 애정이 크고, 사업장의 상황을 잘 압니다. 그리고 진료실이 아닌 일터에서 당장 약물치료가 필요한 상태는 아니지만 관리가 필요한 근로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습니다. 어떤 의사보다 생활습관의학을 적용하기 좋은 조건에 있습니다.
두 가지 걸림돌
하지만 크게 두 가지 걸림돌이 있습니다. 하나는 직업환경의학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이고, 다른 하나는 생활습관의학에 대한 이해 정도입니다. 생활습관의학을 직업환경의학의 반대, 즉 건강 문제의 원인을 근로자 개인에게 돌리는 의학으로 바라본다면, 생활습관개선에 우호적인 태도를 갖기 어렵습니다. 특히 열악한 근로환경과 근무조건(늦은 급여, 장시간 노동 등)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을 만나면 생활습관의학적 상담을 하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현행 제도에서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가 근로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와 상담 시간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개인의 건강에 근로환경뿐만 아니라 생활습관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부인할 의사는 없습니다. 진정한 문제는 생활습관의학을 적용하기 어려운 조건입니다. 재해성 건강문제를 예방하는 것을 넘어 일하는 사람의 건강상태를 실질적으로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보다 진취적인 그림을 그려 나간다면 생활습관의학은 직업환경의학의 든든한 지원군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생활습관의학에 대한 이해 부족도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가 생활습관의학을 받아들이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생활습관의학을 단지 건강한 생활습관이 무엇인지 근로자에게 설명하는 정도로 이해한다면, '이미 생활습관의학을 적용해왔는데 큰 효과는 없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동기부여와 행동변화를 목표로 삼는 생활습관의학
지난 10여 년간 건강한 생활습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최대한 상세한 상담을 해왔지만, 실제 생활습관을 바꿔 만족할 만한 개선을 경험한 근로자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투여한 노력에 비해 매우 비효율적인 성과입니다.
생활습관의학의 핵심은 동기부여와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정확한 사실 전달만으로는 행동이 변하지 않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사람들이 경각심을 느끼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변화를 실천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를 지속할 수 있는지가 생활습관의학의 주된 고민거리입니다.
의사들에게는 낯선 과제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의사들은 검사를 하고, 그 결과를 해석하고, 필요에 따라 약을 처방하거나 시술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의료의 행위 주체는 의사이지 환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생활습관을 바꿀 수 있는 것은 환자 자신이지 의사가 아닙니다. 때문에 기존의 의학 패러다임에서는 생활습관을 바꾸는 과정에서 의사 역할은 찾기 어렵습니다.
생활습관의학 적용의 좌충우돌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강한 생활습관에 대한 의사들의 지식이나 정보도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생활습관의학회에서는 식단, 신체활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 물질 의존(음주, 흡연), 사회적 관계로 구성된 6개의 생활습관을 건강하게 개선함으로써 질병의 예방 및 치료를 추구합니다. 약을 처방하듯이 환자들에게 건강한 생활습관을 적절히 처방해야 할 텐데, 어떻게 처방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도 막연합니다.
필자의 경우 초기에 ‘최대 용량’의 생활습관 개선을 처방하다. 오히려 반감을 산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사업장 출입이 금지당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환자의 준비 정도에 맞춰 생활습관 처방을 해야 했는데, 모든 지식을 쏟아붓는 방식의 처방을 했던 것입니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이 생활습관의학의 달인이 된다면
만약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이 생활습관의학의 달인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건보 건강검진만 받는 사람들과 특수건강진단을 받는 사람들의 건강상태 개선 정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든지 근로자들의 건강관리에 필요한 검사도 할 수 있고,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할 수 있는 다양한 직업건강 사업이나 제도의 도입도 주장할 수 있을 겁니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활동 영역이 더욱 넓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드는 일, 일터를 건강하게 만드는 일은 결국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의 몫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을 감안하면, 피할 수 없는 과제이지 않을까요?
작가소개
이의철 선생님은 LG 에너지솔루션의 기술연구원 부속의원 원장으로 근무하고 계시는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입니다. 국제 생활습관의학 전문의(DipIBLM/KCLM)를 취득하셨고, 대한생활습관의학회 총무이사로 활동하고 있고, 차의과대학 통합의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생활습관의학’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저서로 <조금씩 천천히, 자연식물식>, <기후미식>이 있습니다.
|